[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예나 지금이나 혹세무민 사이비종교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틈타 신흥종교 우후죽순 사이비종교 가정과 사회 파괴 잇따라 일어나 '백백교' 10여년 동안 신도 620명 무참히 살해 1936년 조선총독부 '유사종교 해산령' 선포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서 일부 종교단체와 목회자들의 행동과 발언이 도를 넘는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종교가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으로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다. 100년전 일제강점기에도 이런 일들은 많았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틈타 신흥종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중에는 사이비(似而非) 종교도 많아 가정과 사회를 파괴했다. 사이비 종교의 위험성을 되새겨볼 겸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본다.
1920년 12월 17일자 매일신보에 '기도만 드리는 고로, 그 촌락이 망한다고'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금년 봄부터 여러 가지의 교(敎)라는 것이 경성(京城)에 많이 생겨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이 적지 않은 모양인데, 요즘 부산(釜山)부 대신동에도 대한이 독립된다고 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기도만 드리는데, 그 신자들은 자연히 빈곤한 경우에 빠지게 되어서 필경은 대신동이란 한 부락이 전멸된다는 말이 있는 고로, 지금 부산경찰서에서는 수괴(首魁)를 검거하고자 낮을 밤 삼아 조사 중이라더라."
식민시대, 사람들의 영혼은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했다. 그 가운데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이비(似而非) 종교도 많았다. '사이비'란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다르다는 뜻이다. 본래 공자의 사이비자(似而非者)에서 유래됐다. 일제 강점기 이런 사이비 종교들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환경에서 차별받고있던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1921년 10월 27일자 매일신보의 '사면팔방'(四面八方) 코너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3년 전(1918년)에 채동지라는 자가 경성을 위시하여 강원도 회양 등지로 다니면서 병을 무불통치로 다스릴 뿐만 아니라, 자식까지도 배게 하는 술법이 있다고 함에, 아무리 조선 여자라도 지력(智力)있는 부녀는 그럴 리가 없지마는, 우매한 여자들은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가서 왜떡(전병)에 담뿍(청국장) 바른(사리가 맞지 않은) 채동지의 침만 먹고(감언이설만 듣고) 올 따름이다."
또 다른 기사도 보인다. "수 일 전까지 2주일 동안 시내 승동예배당에서는 김익두(金益斗)라는 목사가 부흥회라는 것을 개최하고, 아직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주로 하여 의학으로 못 다스리는 병을 낫게 하고, 또 자식을 낳게 한다 하니까 기를 쓰고 가서 기도를 받고, 그 기도 값으로 돈이 없으면 금반지와 금비녀를 빼어놓고 온 여자가 수 만에 이르렀다. 조선 여자가 미신에 빠지는 것은 가히 복통할 일이다."
1923년 11월 1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조선 종교 현황이 나온다. △기독교=포교소 2560개, 신도 36만8593명 △불교=사찰 126개, 신도 16만2892명 △천도교=포교소 1114개, 신도 11만5465명 △김(金)파 시천교=포교소 170개, 신도 2만685명 △송(宋)파 시천교=포교소 128개, 신도 1만4420명 △보천교=포교소 4개, 신도 1만5483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생소한 종교들이 눈에 띈다. 시천교(侍天敎)는 동학계 신종교다. 1905년 12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라 개칭했고, 그 다음해가 되자 이용구 등 친일파 62명을 출교(黜敎) 처분한다. 그러자 이용구는 1907년 4월 시천교를 만들었다. 시천교라는 명칭은 천도교 주문에서 따온 것이다. 1912년 이용구가 사망하자 시천교는 가회동 시천교와 견지동 시천교로 나누어졌다. 가회동 시천교의 교주는 김연국, 견지동 시천교의 교주는 송병준이었다. 보천교(普天敎)는 증산교(甑山敎) 계열의 항일 신흥종교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사망한 후 그의 제자인 차경석은 일본 경찰의 체포령 속에서 1921년 보천교를 창시했다. 차경석은 1922년에는 잡지 보광(普光)을 발행했고, 1924년에는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인수해 운영하기도 하였다.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자 조선총독부는 '유사종교 해산령'을 선포하면서 보천교를 해체했다.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백백교'(白白敎)다. '지옥 문'을 열은 전대미문의 사교(邪敎) 살인집단이었다. 교주 전용해 등이 10여년 동안 최소 620명의 신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범죄사건이었다. 1923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에 백백교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띈다. "백도교(白道敎) 교주 전정운(일명 전백백)이 죽으면서 전 재산과 애첩 40명을 큰 아들 전용주에게 부탁하고자 했으나, 전용주가 똑똑하지 못한 까닭에 장인이자 제자인 우광현이 교주가 되면서 그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는데, (중략) 집안 간 재산 분쟁이 일어나 서로 경성지방법원에 고소를 제기하여 우광현은 구속되었다."
교주가 사망한 후 재산싸움이 벌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이다. 차남 전용해는 재빨리 외할아버지 우광현과 결탁하여 재산과 교단을 차지했다. 패배한 전용주는 별도로 인천교(人天敎)를 만들어 교주가 되었다. 1923년 전용해가 형을 내쫓고 인천교까지 장악한 후 이름을 새로 정하니 이것이 '백백교'다.
백백교는 14년 후인 1937년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킨다. 조선일보는 1937년 4월 13일 4면짜리 호외까지 발행하면서 백백교 사건을 보도했다. 제목은 '흉포(兇暴)의 극(極)-참학(慘虐)의 절(絶)-마도(魔道) 백백교 죄상'이었다. 이 사건은 1937년 2월 황해도 해주 약종상의 아들인 유곤용이 교주를 만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유곤용은 집안 재산은 물론이고 아버지 유인호와 여동생 유정전까지 백백교에 빼앗긴 사내였다. 여동생은 교주의 첩이 되어있었다. 유곤용은 "백백교 가문에서 혼자만 믿지 않은 것은 잘못이며 재산을 추가로 헌금하겠다"고 접근해 어렵사리 교주를 만났다. 서로 말다툼이 일어났고 교주가 칼을 빼어 찌르러 들었다. 유곤용은 발길질로 교주를 쓰러트리고는 곧바로 왕십리 파출소로 달려갔다. 이후 경찰수사가 진행됐다. 양평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시신들이 발굴됐다. 두달 뒤인 4월, 도망갔던 교주 전용해는 양평 용문산 기슭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그 해 12월 17일자 매일신보에는 "잔인무도한 백백교 사건은 세계 범죄사에 기록을 세울 것이며, 법의학상 많은 자료를 남기게 되었다. 일본 동경경시청에서까지 경부 2명을 파견하여 조사했다"고 써 있다.
사이비와 종교가 만나면 사이비 종교가 탄생한다.
종교는 사회의 동반자여야 하건만 사이비 종교인들은 공기층에 악성 바이러스를 뿌려댄다. 사이비 종교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인 것이다. 어디 종교에만 사이비가 있는가. 입으로는 백성을 위한다며 온갖 특혜만 다 누리면서 군림하려는 정치인, 관료들 모두 사(似)인 듯 하나 비(非)인 것이다. 따뜻한 햇볕만이 사이비라는 그림자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비'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할 단어임이 분명하다.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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