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공수처가 온다..검찰개혁 완성인가 괴물기관의 탄생인가
여야 주장 맞서는 가운데 일방적 출범 과정 '흠집'..표적·보복수사 사라질지 미지수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른바 공수처 출범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견제하고 정치적 중립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수처가 출범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적수사, 보복수사'는 사라질까.
분명한 점은 출범을 강행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각각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 있는 상황에서, 여야 합의가 짓밟힌 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을 전망이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후보 선정에 있어 의결정족수를 현재 6명 이상(총 7인으로 구성)의 찬성을 3분의 2(5명 이상)로 바꾼 것이다.
여야 교섭단체 각 2인, 대한변호사협회장과 법원행정처장, 정무직 공무원인 법무부 장관으로 추천위가 구성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무력화한 셈이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오는 9일 본회의(또는 10일 이후 임시국회)에 올라 국회 문턱을 최종적으로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이 처리되면 추천위는 곧바로 재가동될 전망이다. 한 추천위원은 통화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소집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수처법에는 '몇 명 이상 위원이 참석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어 야당 추천위원 2인을 제외한 5명이 참석해 의결하면 후보 추천은 종료된다. 이에 따라 추천위의 공수처장 후보 2인 추천→대통령 지명→국회 인사청문회→대통령 임명의 과정을 거쳐 이달 안, 늦어도 내달 초에는 출범할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출범과 별개로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인 만큼 공수처의 출범 과정을 곱씹어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인 민주당과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한 국민의힘,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를 살펴보면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10월2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라고 판단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당장 "왜 지금 검찰개혁이 필요한지 잘 증명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 총리 글의 핵심은 '검찰개혁', 네 글자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 직전, 다스 실소유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다스'가 이 후보(이 전 대통령) 소유가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대선 직후 출범한 정호영 특검팀의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도 공수처 출범의 당위성으로 작용한다. 당시 검찰은 '논두렁 시계'로 대표되는,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의혹과 피의사실들을 언론에 흘리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른바 피의사실 공표·공무상 비밀 누설 등인데, 형법에서는 처벌이 가능하나 수사기관이 검찰 스스로이기 때문에 이런 혐의로 처벌받은 검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공수처는 검사 등의 이 같은 혐의를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이 같은 예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선택적 수사·기소하는 검찰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 일을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공수처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를 이날 강행 처리한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고인 물이 투명함을 유지하기 힘든 것처럼, 감시 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며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길을 흔들림 없이 걷겠다"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이 공수처 반대를 외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작동한다.
공수처법 제22조는 수사처 소속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국회 의석수가 현재와 정반대 상황에 놓여도 더는 '보복수사' '표적수사' 등이 있어서는 안 된단 취지다.
그러나 기존 법안뿐만 아니라 수정된 내용을 보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공수처 공무원들은 사실상 처장이 모두 임명한다. 공수처 서열 2위인 차장은 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수사처 검사는 공수처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사위는 처장과 차장, 처장이 위촉한 1인, 여당 추천 2인,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되며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수사처 수사관은 처장이 직접 임명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여야 모두가 어느 정도 공감하는 후보 추천은 불가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여권 성향 인사가 처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진다.
정권이, 국회 상황이 바뀌고 3년 단임의 처장 교체시기가 맞물리면 지금과는 정반대 성향의 법조인이 공수처장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공수처장 임명 방식과 그 처장이 공수처 인사권을 행사하는 구조라면 전체적인 공수처 성향이 정치적 중립을 갖췄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셈이다.
야당은 또한 공수처의 권한이 '괴물' 수준이라는 점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여권이 검찰을 비판하는 그 대목이 공수처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는 얘기다.
야당측 추천위원들이 공수처장 예비후보로 제시했던 검찰 출신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 공수처장 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히면서 "제가 공수처를 괴물로 본 이유는 두가지로, 첫째 괴력 때문"이라며 "검찰을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진 무소불위 권력기관이라고 비난하고 '개혁'을 한다면서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이날 "판사·검사에 대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권력기관을 만들고 그 책임자를 사실상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게 하는 법은 독재국가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도대체 문재인 정부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또한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갖는 기관이 헌법적 근거가 없고 정부조직법의 설치 원리에도 맞지 않는 기관이라며 법적 성격을 문제삼고 있다.
따라서 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점은 오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자신들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공수처법을 제정할 때 명시한 야당의 비토권을 스스로 뒤엎었다는 점에서 어떤 변명도 다수의 국민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공수처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실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가 점점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으로 변화했다. 지난해 3월말 조사에서 공수처 설치 찬반 여론은 65%대 24%였으나, 7개월여 후인 10월 조사에서는 51%vs41%로 격차가 좁혀졌다.
같은 주제는 아니지만 정권과 연루된 의혹을 받는 '라임·옵티머스 수사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44%는 특검을, 39%는 공수처 출범을 지지했다. 공수처보다는 현행의 특검 제도를 더 지지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의 여당이 정국 유불리에 따라 또 공수처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공수처장 임기가 내년 초에 시작하면 2024년에 교체되는데 같은해 4월에 총선이 있다"며 "또 2022년에 대선이 치뤄져 정권이 만약 교체되면 2년간 곧 임명될 공수처장과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180석에 가까운 민주당이 만약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공수처법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공수처 개정안 처리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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