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던 사나이 '척 예거', 하늘로 돌아가다

박용필 기자 2020. 12. 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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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척 예거가 1985년 4월 미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1947년 자신이 조종해 음속을 돌파했던 Bell X-IE 항공기 앞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인류 최초로 음속의 벽을 돌파했던 사나이 척 예거가 7일(현지 시간) 타계했다. 향년 97세.

AFP통신은 “음속보다 빨리 비행한 첫 인간이자, 그의 업적이 헐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던 예거가 이날 사망했다”고 예거의 부인 빅토리아 예거를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빅토리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랑하는 척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전해야만 하는데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삶은)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인생이었다”면서 “미국의 가장 위대한 조종사였던 그는 강함과 모험, 애국의 유산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빅토리아는 예거의 구체적 사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예거는 1947년 당시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발된 실험용 항공기 ‘Bell X-1’을 타고 인류 최초로 음속의 장벽을 돌파했다. 당시 B-29 폭격기에 실려 해발 1만3700미터까지 올라간 ‘Bell X-1’은 마하 1.06(시속1130㎞)의 속도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인해 그는 “살아있는 인간 중 가장 빠른 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때의 경험에 대해 그는 “그 사건은 우주와 스타워즈, 인공위성으로의 길을 열었다”고 2007년 회고한 바 있다.

찰스 엘우드 예거가 본명인 예거는 1923년 웨스트버지니아주 미라에서 태어났다. 픽업트럭 정비를 하던 아버지를 도우며 어린시절을 보내다 1941년 미 육군 항공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발발한 세계 2차 대전에 항공기 정비병으로 참전했다.

이후 당시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P-51 머스탱’의 조종사로 직접 전투에 참가해 종전까지 약 12차례의 승리를 거뒀고, 하루 동안 독일의 주력기 ‘Me 109s’ 다섯대를 한꺼번에 격추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44년 적 점령지 상공에서 격추됐으나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에 의해 구출돼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종전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전투기 편대를 이끌던 예거는 1975년 미공군 준장 계급으로 예편했다. 때문에 고졸 출신 정비병에서 시작해 장성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신형기나 실험기의 시험조종사이기도 했던 그는 옛 소련 최초의 제트 전투기였던 ‘MIG-15’를 포함해 360종이 넘는 군용기를 조종했으며 총 비행 시간은 1만 시간이 넘는다.

그의 이름은 1973년 ‘미우주항공명예의전당(National Aviation Hall of Fame)’에 새겨졌다. 그의 업적은 1983년 영화 <필사의 도전 (The Right Stuff)>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AFP는 그가 89세의 나이에도 초음속 비행에 나섰고, 숨을 거둔 올해에도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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