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희곡이란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길"

이태훈 기자 2020. 12. 8.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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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 장막 희곡 부문에 동이향 작가 "독자적 연극 세계 구축" 評
7일 제14회 차범석희곡상 수상자인 동이향(가운데) 작가가 심사위원인 극작가 배삼식(왼쪽)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연극평론가 허순자 서울예대 교수의 축하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오종찬 기자

“이 작품의 결들을 곱게 쓰다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곡을 쓰는 일이 세상과 만나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연극이 제게 유일한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7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편집동에서 열린 제14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 올해 장막 희곡 부문 수상작 ‘간과 강 – 인어가 진화하는 동안’의 동이향(董以香·45) 작가는 “제가 지내왔던 고독한 시간을 언급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정말 고독했었나, 싶었을 정도로 그것이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어졌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평에서 “독자적인 연극 세계를 추구해온 중견 작가의 길은 외로움과의 동행이었다”고 언급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작가 인터뷰 및 심사평] “우리가 잃어가고 퇴화시키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너무나 뜨거운 사랑이라 그것이 더 이상 아니게 되면 떠나야만 하는데, 연극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고, ‘간과 강’은 그러한 변화 가운데 제 언어인 희곡을 오랫동안 쓰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어떤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심사위원 허순자 서울예대 교수는 “12·13회 연거푸 수상자를 내지 못해 심사위원들이 훨씬 더 긴장했는데 뛰어난 작품을 만나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극작가 이강백 선생님이 오래전 작가에 대해 ‘이 천재적 재능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언급하셨더군요. 선생님, 이제는 그런 두려움 안 느끼셔도 될 것 같아요!”

이날 시상식에서 차범석 선생의 장녀인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은 “2년간 당선작을 못 내다 만난 희곡이기에 더 소중하고,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욱 감사하다”며 “먼 곳에 계시는 아버지, 지난 9월 먼 길 떠나신 이종덕 사장님을 비롯, 최만린⋅김기덕⋅신봉승 선생님 모두 변함없이 이곳에 함께하시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동이향 작가에게는 상금 3000만원과 트로피가 수여됐다. 작가는 “기쁨도 고통도 함께하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저를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봐주시고 흔들림 없이 격려해주신 부모님께 이 상을 바친다. 두 분께서 너무나 기뻐하셔서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배해선도 “차범석희곡상 시상식은 더 많은 빛과 조명을 받아야 될 분을 세상 앞에 드러내는 자리이자, 앞으로의 희망을 바라보게 되는 꿈의 자리”라며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차범석 선생님을 떠올리며 작품 활동 이어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차범석희곡상은 극작가 차범석(1924~2006)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지난 2007년 1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차범석 선생은 희곡 ‘불모지’와 ‘산불’, 드라마 ‘전원일기’ 등을 집필한 우리 전후문학의 1세대로,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하는 데 공헌한 우리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올해 뮤지컬 극본 부문에선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은 수상자 가족을 포함해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며 치러졌다. 심사위원으로 허순자 서울예대 교수, 배삼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참석했고, 신시컴퍼니 박명성 예술감독,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전문] 작가 수상소감

7일 오후 서울 조선일보사에서 열린 제14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에서 장막 희곡 부문 수상자 동이향 작가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연극을 시작하면서 20대가 시작되었고, 30대를 거쳤고, 지금은 4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몇년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온통 사랑으로 들어찼던 곳이 허허로움으로 가득했고, 그 곳에서 그걸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찾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작업실 겸 극단 두의 연습실인 이행성 극장을 만들었습니다.

이행성 극장의 이름은 ‘이 행성의 이행성에 관한 극장’입니다.

사실, 속으로는, 연극이 제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순간으로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뜨거운 사랑이라 그것이 더 이상 아니게 되면 떠나야만 하니까요. 헌데 그러기에는 연극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깊은 어둠이 주는 온갖 환영과 스펙터클과 사념과 몽상과 상상과 기억들. 그래서, 저로서는 연극이 제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을 찾고 싶었습니다. 연극 저 너머로 사라진다는 것. 누군가가 되지 않고 그 너머로, 사라진다는 것. 그렇게 이행해볼 수 있을까.

거기에는 연극을 그만두게 되는 것과 연극을 대충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역설적인 노력, 연극을 그만두고 싶었고, 연극을 조금쯤 대충하고 싶어 연극 연습실을 만들었다고 하면 저라도 믿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어느 때보다 지루함을 견디며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간과 강>은 그런 와중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고, 그러한 변화 가운데 제 언어인 희곡을 오랫동안 쓰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어떤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고, 그 세계가 가진 불완전함 만큼, 제가 지금 놓여있는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결들을 이렇게 곱게 쓰다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곡을 쓰는 일이 세상과 만나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렇게 찬란했던 사랑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연극이 제게 유일한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제가 지내왔던 고독한 시간을 언급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정말 고독했었나, 싶을 정도로 그것이 견딜만한 것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난해하다

관념적이다

추상적이다

제가 창작자로서 참 많이 들어온 말이었습니다.

그건 사랑의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있었으니까 제가 여기까지 해올 수 있었겠지요.

이 말을 감당해야 할 후배들 대신 여기 서봤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어떤 말의 길이 누군가에게 가닿아 고통과 절망의 말들이 순환하는 곳이 극장이 되기를 여전히 꿈꿉니다.

삶이 이토록 찬란하므로 그 어둠이 깊습니다.

그 어둠이 거기에 반드시 있으므로, 이 삶의, 이 모든 순간의 방황이 깊습니다.

이 모든 삶 속에서, 기쁨도 고통도 함께 하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두가 어느 자리에서 단단히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든 닿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저를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지켜봐주시고 흔들림없이 격려해주신 부모님께 이 상을 바칩니다. 이 상을 받고 두 분께서 너무나 기뻐하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2월 7일

차범석희곡상 수상자 동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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