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 연료 재보급 '우주 주유소' 곧 등장..'우주군' 진출 탄력 받나

이정호 기자 2020. 12. 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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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기업 오비트 팹이 제시한 ‘우주 주유소’의 상상도. 지구 궤도 여러 군데에 우주 주유소를 띄워 다른 인공위성들에 연료를 재보급할 수 있다. 오비트 팹 제공
기존 인공위성들, 기술 부족 탓에
연료 떨어지면 폐기했던 ‘일회용’
미국 업체 “내년 6월 발사” 공언
트럼프 이어 바이든, 우주군 관심
활동 본격화 땐 새로운 시장 열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1957년 우주로 날아간 뒤 인류가 쏘아올린 위성은 모두 5000여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현재 정상 작동하는 인공위성은 2000여기다. 발사한 위성에 대비해 정상 작동 중인 위성이 적은 건 위성이 일회용 제품이기 때문이다. 위성이 필요하면 기존 위성을 오래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다시 쏘는 방식으로 인류는 대응해 왔던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인공위성은 온갖 전자장비가 멀쩡해도 궤도나 자세를 바꾸기 위한 연료가 소진되면 그 길로 ‘폐기’ 딱지가 붙는다. 우주 공간에서 연료를 재보급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조등과 브레이크 등 모든 부품이 잘 작동해도 주유소가 없는 허허벌판에서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최근 지구 궤도를 돌면서 인공위성에 연료를 재보급하는 ‘우주 주유소’ 시장이 급속히 열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기술력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관련 장비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출범한 미국의 우주군으로 인해 전에 없던 우주 주유소 수요가 창출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주 디펜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우주개발업체 ‘오비트 팹’은 “내년 6월 우주 주유소를 발사할 예정”이라며 “우주 주유소가 지구 궤도에서 상업적, 과학적, 군사적 목적을 구현하는 필수 자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비트 팹이 지구 궤도에 올리겠다고 공언한 우주 주유소의 덩치는 사무용 복사기 정도이다.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쏘는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다. 내부 적재 용량은 약 15ℓ인데, 정확히 어떤 연료를 담을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위성 연료로는 질소와 수소의 액체형 화합물인 ‘하이드라진’이 주로 사용된다.

인류가 그동안 우주 주유소라는 개념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초고온과 초저온, 진공이 공존하는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 총알의 10배 속도로 도는 인공위성에 안전하게 접근한 뒤 정확히 도킹해 연료를 주입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발사 때 실었던 연료를 모두 소모하면 멀쩡한 위성들이 버려진 이유다. 수십년간 기술적인 진보를 이룬 최근에서야 이런 문제가 점차 해결되면서 우주 주유소라는 전에 없던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오비트 팹은 특정 위성에 접근해 연료가 새지 않도록 밀봉한 가운데 재보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오비트 팹이 공개한 상상도를 보면 수많은 우주 주유소가 지구 궤도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연료가 필요한 위성과 만날 수 있도록 돼 있다. 자동차가 주변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듯 위성도 가장 가까운 우주 주유소에서 연료를 재보급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주 주유소 시장의 형성 가능성은 미국의 거대 우주항공기업 노스럽 그러먼이 ‘MEV-1’이라는 위성을 통해 앞서 입증했다. 지난 2월 미국 상업용 통신위성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 오비트 팹까지 가세하면서 수요에 부응할 공급자들이 잇따라 생긴 셈이다.

우주 주유소의 전망은 최근 새로운 고객을 만나면서 더욱 밝아질 것으로 보인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출범시킨 우주군이다. 적과의 전투나 대치 중 우주선이나 위성의 연료가 떨어지는 상황을 맞이하는 건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작전 지역이 제트엔진을 쓸 수 있는 하늘이 아니기 때문에 공중 급유기의 지원도 불가하다. 이 때문에 적이 띄운 우주 물체를 요격하거나 지상공격을 하기 전, 또는 작전 도중 든든하게 연료를 채우는 것은 필수다. 우주 주유소가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현재까지 나타난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태도도 우주군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우주군이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군사용 위성은 궤도 변경 등의 기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연료 소모도 크다”며 “연료 재보급이 가능하다면 우주군 입장에선 분명 반길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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