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Z세대는 말한다.."한국은 오샤레한 나라" [글로벌리포트]
달고나커피·CLIO에뛰드하우스..
상반기 유행은 from 코리아
모테기 외무상도 정주행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도 화제
최근 대박난 걸그룹 니쥬 트와이스 성공전략 복사
세계를 겨냥한 케이팝
1억3000만 인구 믿고 안주한 제이팝에
시사하는 바 클 수밖에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지난 4일 오후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도쿄 시부야.
교복에 책가방을 맨 중·고등학생들이 하굣길 이 지역 최대 음반판매장인 타워레코드로 속속 들어왔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총 8개 층 가운데 5층 전층이 K팝코너다. 일본 J팝은 3층에 위치한다. 한국 K팝과 일본 J팝이 동일 면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댄스 안무를 하는 모습이 좋아요." 이곳에서 만난 교복 차림의 여학생 2명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팬이라고 외쳤다. 고교 2학년인 이들은 "과거 소녀시대, 동방신기처럼 지금 일본에서는 BTS, 트와이스 등을 대표로 제3차 한류 물결이 치고 있다고들 한다"며 "K팝이라든가 한국 화장품이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고, 뭔가 한국이라고 한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했다. 대화가 진행되는 중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본 여성 2명이 지난달 30일 한국에서 갓 데뷔한 한국 아이돌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앨범 2개를 집어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 "한국? 멋지고 세련됐다"…3차 한류붐
또 다른 음반 매장인 시부야 쓰타야 1층. 교복 차림의 중학생 2명이 이곳에 전시된 9인조 니쥬(NiziU) 멤버들의 얼굴 포스터를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연신 "리오, 가와이(예쁘다)!" "마야, 가와이!" "아야카 가와이!"라고 외쳤다. 니쥬는 일본 소니뮤직과 한국 JYP가 손잡고, 전원 일본인이지만 '한국식 트레이닝'으로 탄생한 걸그룹이다. 이름을 가리고 보면 한국 걸그룹이라도 해도 모를 정도로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이 한국식이다. '일본스러운' 데라고는 하나 없이 한국식으로 꾸며진 일본 가수들에게 거부감은커녕 동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1020세대에게 한국은 "오샤레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는 듯 하다. '오샤레'는 '멋짐' '세련됨' '근사함' 정도로 해석되는 일본어다. 일본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일류(日流)가 한류를 추격해야 한다"거나 "일류는 한류에 완패당했다"는 냉정한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대중문화 주도권이 이미 한국으로 넘어갔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10년 전 2차 한류 붐까지만 해도 한류는 '한국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번 3차 한류 붐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이곳 일본 현지의 목소리다. 한국 화장품, 한국 노래, 한국 음식 등이 한국이란 카테코리를 뛰어넘어, 그 자체로 이미 일본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만연하게 소비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일본어로 '한국패션'을 검색해 보면 무려 399만건, 한국화장품은 219만건, 한국요리 160만건이 검색될 정도다.
정진수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장은 "'한류 생활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프랑스, 이탈리아를 패션과 화장품의 중심지라고 했는데, 이제 신트렌드의 중심은 한국이다'라는 게 일본인들의 인식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한국이 좋으니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좋으니까 소비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 올 상반기 Z세대(1995~2003년생)들의 유행과 가치관에 대한 한 조사에서 "젊은이의 유행은 한국에서 왔다"는 결론이 나왔다. 음식분야에서는 '달고나커피'가 1위, 화장품에서는 한국 브랜드 'CLIO(클리오)'와 '에뛰드 하우스'가 디오르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도 한류에 대한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달 도쿄에서는 한·일 양국의 의원연맹 총회가 열렸다.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악화된 관계를 풀고자 한국 측에서는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한국의 몇몇 여야 의원이 참석했다. 정가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일본 측 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내리 15분간이나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과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 '훈계식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 냉랭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건 다름아닌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일한의원연맹의 한 간부급 정치인이 "사랑의 불시착'의 열혈 시청팬임을 자처하면서 대화가 한층 부드럽게 전개됐다고 한다. 이미 '사랑의 불시착'을 '정주행'했다고 밝힌 일본 외무성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지난 10월 몽골 출장 당시 트위터에 '사랑의 불시착'이 몽골에서 촬영됐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올리기까지 했다.
한·일 관계가 징용 문제로 '최악의 시기'로 일컬어지고 있음에도, 3차 한류 붐이 그 만큼 견고하다는 의미다. 과거 2차 한류붐이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일본 내에서 혐한 발언, 헤이트 스피치 등에 휩쓸려 급속히 꺼져갔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달 말 한국관광공사와 아시아나항공이 개최한 한국관광 이벤트에 참석한 시미즈 가오리씨(48·여)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스무번도 넘게 갔지만 그 역동성에 반해 또 가고 싶다"면서 "BTS를 좋아하게 돼 과거 양국의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화 말미에 그는 한국어를 독학했다며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서 줬다.
■ 일본은 왜 완패당했는가
일본은 이제 한류의 '성공방정식'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한류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황성운 한국문화원장은 "'한류의 성공비결이 뭐냐'는 게 일본인들이 최근 가장 많이 질문해오는 부분이다"라고 했다.
J팝이 단일시장으로는 세계 2위인 1억3000만명 인구의 일본 내수시장에 안주한 것과 달리, 지난 20년간 K팝은 협소한 한국 음악시장을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높은 완성도'는 주무기다. 그 절정판이 BTS다.
일본의 시사평론가 시라카와 쓰카사씨는 시사잡지 프레지던트에 '일본의 엔터테인먼트가 한국에 완패한 이유' 제목의 글에서 "한국 연예기획사들은 세계시장에 필사적으로 접근했으며,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프로 지향이 강한 한국 엔터테인먼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좀 과장하면, '일본에는 세계시장을 겨냥할 프로듀서가 없다.' 그리하여 탄생한 게 한국의 프로듀싱 기업을 적용한 일본 음악그룹 '니쥬'다. 소니뮤직은 일류(日流)의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 아예 한국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소니뮤직과 JYP는 일본 최대 민영방송인 니테레를 통해 니쥬 선발부터 성장과정, 박진영의 멘토링까지 그대로 노출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10대 여성 아이돌의 성장기를 공개해 응원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JYP의 여성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성공전략의 복사판이다.
니쥬를 '제2의 트와이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일본인들은 니쥬 탄생의 주역인 박진영이 연습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면서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에 "말의 마법에 감동했다"며 '세계 최고의 상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TS식 스타육성법, 소니도 빨아들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니쥬에 대해 "세계를 매혹하는 K팝이 갈고닦은 '성공방정식'이 녹아 있다"고 분석한 뒤 "'넥스트BTS'라고 하는 블랙핑크나 슈퍼엠이 이미 세계시장에서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한국 연예기획사들이 '안정적인 양산체제'를 갖고 차세대 스타를 창출하고 있어 K팝 열풍은 당분간 계속 몰아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류 #BTS #일본 한류 #니쥬 #제3차 한류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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