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코로나 수능’

박은호 논설위원 2020. 12. 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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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추위’란 말이 있지만 사실 첫 대입 수능시험은 1993년 8월 한여름에 치러졌다. 단 한 번 시험으로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가혹하니 8월과 11월 두 번 시험을 봐 더 좋은 성적을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매미 울음소리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등 여러 불만이 나왔다. 11월 시험은 너무 어렵게 출제돼 “이럴 거면 왜 두 번 시험 보나” “부담만 크다”는 반발이 잇따랐다. 이듬해부터 수능은 ’11월 셋째 주 목요일 1회 시험’으로 변경됐다.

/일러스트

▶28년을 이어온 수능 시험을 제날짜에 못 치른 건 네 번이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와 2010년 G20 정상회담이 수능일과 겹치자 교통 체증, 경찰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6~7일씩 늦췄다. 포항 지진으로 연기된 2017년 수능은 시험 하루 전날 저녁에 전격적으로 1주일 연기 발표가 나 학생·학부모들이 큰 혼란을 빚었다. 코로나 사태로 2주 늦춰진 오늘 수능은 역대 가장 늦은 시험이다. 수험생들은 그만큼 더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993년 첫 수능을 본 123만 수험생은 ‘저주받은 세대’로 불린다. 입시제도가 갑자기 바뀌고, 한 해 두 번 시험 치르고, 대학 졸업반 때는 IMF 사태로 사회 진출 길이 막히다시피 했다. 올해 수능은 그 절반도 안 되는 49만명으로 역대 가장 적다. 그러나 비할 데 없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 집단감염 등으로 5월에야 첫 등교를 하고, 자기 페이스에 맞춰 집중 공부할 수 있는 여름방학은 2주로 짧아졌다. 하필이면 코로나 3차 대유행 국면에서 시험을 치른다.

▶오늘 수험생들은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의무적으로 발열 체크를 받아야 한다. 열이 높으면 별도 시험장으로 가야 하니 그 심정이 어떨까 싶다. 감염 방지용으로 설치된 책상 앞 칸막이는 시험지를 제대로 펴기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심적 압박감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마스크 쓴 채 불편한 호흡으로 가장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수능 시험지에는 제시된 문구를 따라 적는 ‘필적 확인’ 칸이 있다. 2004년 ‘휴대폰 부정 시험’ 사건을 계기로 처음 도입돼 매년 다른 문구가 제시된다. 2005년 첫 문구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따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었다. 부끄럽지 않게 시험 보라는 뜻도 담겼다. 작년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김남조 ‘편지')였다. 올해 문구는 전례 없는 역경을 헤치고 시험지를 받아든 49만 모든 수험생을 따듯하게 격려하는 내용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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