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약혼반지와 동전 3개만.." 아파트 화재 유족 오열

오상도 입력 2020. 12. 2. 18:01 수정 2020. 12. 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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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군포 아파트 화재 현장
"8∼10차례 폭발음"..경찰, 거실 난로 발화지점으로 지목
유독가스 탓에 윗층 주민도 목숨 잃어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아파트 화재 현장. 불길에 시커멓게 그을린 외벽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 준다. 오상도 기자
“겉옷에서 (약혼)반지와 동전 3개만 나왔어요. 내년 2월 결혼할 아이인데….”

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백두한양9단지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유족들은 하염없이 울음을 쏟아냈다. 전날 숨진 한국인 근로자 A(32)씨의 어머니와 가족은 무릎을 꿇고 앉아 12층을 바라봤다. A씨의 고모부는 “조카가 수년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인테리어 공사를) 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늘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출근하곤 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장에서 함께 추락해 사망한 태국인 B(38)씨 등 외국인 근로자 4명에게 섀시 교체 관련 작업 내용을 전달하는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유족은 시공업체가 난로 사용에 대한 안내와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는 등 관리소홀로 참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 “현장에서 8∼10차례 폭발음”…경찰, 거실 난로를 발화지점으로 지목

전날 오후 4시37분쯤 이 아파트 12층에서 섀시 공사 도중 일어난 화재로 4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가운데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현장에 켜둔 전기난로를 발화지점으로 지목했다. 현장에선 거실에 전기난로를 켜둔 채 섀시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다른 3명의 근로자도 난로에서 처음 불이 붙었다고 증언한 상태다.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백두한양아파트 주민들이 불이 난 화재 현장 앞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오상도 기자
경찰 관계자는 이날 현장감식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공사 현장에는 모두 8명이 있었다”면서 “추락해 사망한 근로자 2명 외에 다른 근로자와 집주인 등 6명은 불이 난 직후 계단을 통해 아래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사망한 2명의 근로자는 베란다에서 섀시 작업 중이라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현장에서 우레탄폼 15통과 스프레이건, 시너 통(1ℓ) 등을 발견했다. 시너 통은 섀시 작업 중 생기는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알려졌다. 현장감식 관계자는 “발화성이 강한 우레탄폼이 난로 주변에 놓인 것으로 미뤄 섀시 공사를 위해 우레탄폼을 상온에서 데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1차 폭발 이후 잇달아 강력한 2차 폭발이 일어나 베란다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피할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난로 주변에 있던 가연성 물질들에 열기가 전해져 불이 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화재 당시 당황한 13층과 15층 주민 3명은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지나쳐 권상기실(엘리베이터의 도르래 등 부속 기계가 있는 공간)까지 갔다가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고, 이 중 C(35·여)씨와 D(51·여)씨 2명이 숨졌다. C씨는 남편과 여섯 살 아들을 남겨두고 화마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D씨의 20대 아들도 함께 대피했으나 위중한 상태다. 이밖에 6명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다쳤다. 

소방 관계자는 "이들 주민은 권상기실 쪽 좁은 문이 비상구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갔다가 좁은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난로 주변 우레탄폼에서 발화된 듯…유독가스 탓에 윗층 주민도 목숨 잃어

현장에서 인명검색 작업을 했던 소방관들은 방화문이 정상 작동했고, 옥상 문이 열려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옥상 자동개폐 장치가 설치됐다고 아파트 관계자들은 밝혔다. 해당 아파트의 경비원은 “옥상 문이 잠겨있지만 불이 나면 센서가 감지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비상등 작동 여부 등은 화재로 소실된 상태라 추후 수사를 통해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망한 B씨를 포함해 해당 인테리어업체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4명이 모두 불법체류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업체 대표를 불러 조사 중이다.

전날 화재의 피해가 컸던 데는 우레탄폼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섀시 작업에서 마감재로 사용하는 우레탄폼은 가격이 저렴하고 단열 효과가 뛰어난 반면 불이 쉽게 붙고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특징을 갖는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방당국은 해당 작업 현장에서 현관문이 열린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유독가스가 위층 계단으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겨울철 공사를 하면서 작업자 편의를 위해 난방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체가 위법은 아니지만, 인화물질과 충분한 거리를 띄우고 전담감시인을 두는 등 충분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이날 공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주민 정모(46)씨는 “화재 당시 ‘펑’하는 소리가 10번 가까이 들렸다”면서 “불길과 새카만 연기가 치솟고 유리 조각 등시 쉼 없이 떨어져 내렸다”고 전했다. 

전날 4시37분쯤 군포시 산본동 백두한양9단지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섀시 교체 작업 중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불로 2명이 지상으로 추락해 숨지고, 2명이 옥상 계단참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등 4명이 사망했다.

군포=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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