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관행'이었던 판공비 논란, 결국 선수협 자체가 문제다

안형준 입력 2020. 12. 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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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뉴스엔 글 안형준 기자/사진 이재하 기자]

결국 '선수협'이 문제였다.

이대호 전 프로야구 선수협회장은 12월 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판공비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대호는 이날 법률대리인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이대호는 1일과 2일 큰 논란에 휩싸였다. 선수협회장으로서 판공비를 '셀프 인상'했고 증빙자료 없이 판공비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대호는 '사실과 다르다'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에 나섰다.

문제를 제기한 쪽의 주장은 이렇다. 이대호가 선수협회장 취임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회장의 판공비를 인상하자고 주장했고 이사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기존의 두 배로 인상된 판공비를 증빙자료 없이 사용해왔다.

이대호는 이에 대해 "판공비 인상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선수협회장 자리를 누군가에게 맡기기 위해 나온 의견이다. 나도 의견을 냈고 다른 선수들도 냈다. 내가 회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회장 선거도 하기 전이었다. 다른 사람이 선출됐으면 그 선수가 인상된 판공비를 받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이대호는 '사실상 회장 추대가 결정된 상황'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대호 측이 공개한 2019년 3월 선수협 타임라인에 따르면 판공비 인상은 3월 18일 이사회에서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됐고 이대호는 22일 10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판공비 인상이 결정된 것은 어쨌든 이대호가 회장직에 오르기 전이 맞다. 다만 '추대'에 관한 것은 이대호 측과 반대 주장을 펴는 측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셀프 인상' 뿐만이 아니다. 이대호는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받아 증빙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 "판공비는 보수 및 급여 성격이다"고 밝혔다. 세금까지 공제한 후 지급을 받는다는 것. 급여는 개인 재산이니 사용내역의 증빙은 당연히 필요없다.

하지만 선수협의 회계에는 사무총장, 이사진 등에게 지급하는 급여 항목이 따로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수협회장의 급여만 '판공비' 명목으로 따로 분리해 집행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이대호의 법률대리인은 이에 대해 "이번 사건으로 알게된 것들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판공비를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고 증빙 자료를 남기라'는 규정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관행이었다. 이제 시정할 생각이다. 다음 회장부터는 문제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사실 '판공비 셀프 인상' 논란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부분일 수도 있다. 자칫 '횡령'이라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이대호 측은 회장 급여와 다른 간부들의 급여가 왜 따로 관리되는지, 회장의 급여는 왜 급여가 아닌 '판공비' 명목으로 관리되는지, 규정상 증빙이 반드시 필요한 '판공비' 항목의 돈을 왜 계속 증빙 없이 사용해왔는지를 모두 '관행'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했다.

잘못된 관행은 곧 '적폐'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적폐는 '추후 시정'이 아닌 '과거 잘못한 이들부터 청산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는 '잘못됐지만 관행이었다. 다음부터는 고치겠다'는 말로 넘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추후 소명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이대호의 법률대리인은 2019년 이사회 회의록, 이대호가 사용한 판공비의 업무추진비 성격의 사용 내역 등을 내부검토 후 공개가 가능하다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대호의 항변은 "판공비를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올린 것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몰랐고 관행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잘못된 관행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 관행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회장이 물러나는 순간에서야 깨닫고 시정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결국 문제는 조직 자체에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선수협의 존폐에 관한 논란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대호는 "선수협은 힘없는 조직이다"고 말했다. 선수협을 힘없는 조직으로 만든 것은 선수협 구성원들 스스로가 아닐까.(사진=이대호)

뉴스엔 안형준 markaj@ / 이재하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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