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하회마을 '전동차 몸살'..문화재 훼손 어쩌나

서효정 기자 2020. 12.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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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1일) 밀착카메라는 '안동 하회마을'과 '전동차'에 대한 얘기입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요.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에 100대가 넘는 전동차가 다닙니다. 편리하겠지만 요란합니다. 관람객들이 타고선 수백 년 된 문화재를 들이받아 부수기도 합니다.

서효정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여기 이 좁은데서 전동차 100대가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사고 많이 나지. 차끼리도 박고 깨지고…]

[초등학생도 하려고 해. 차 같지가 않으니까…]

낙동강 줄기가 휘감고 돌아나가는 마을,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입니다.

600년 전 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하회마을 주차장입니다.

여기다 차를 대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저희도 매표소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한 남성이 말을 걸어옵니다.

[이거 타시고 마을 안까지 다 들어갈 수 있어요.]

전동차 얘기입니다.

셔틀버스보다 편리한 점을 강조합니다.

[전동차 A업체 관계자 : 마을 안으로 구석구석 다 들어갈 수 있거든요.]

서둘러 빌려야 한다고도 귀띔해 줍니다.

[전동차 A업체 관계자 : 한 2시쯤 되면 손님들 확 밀려요. 그때는 전동차 부족해요.]

하회마을 입구로 가봤습니다.

전동차 대여 현수막이 양옆에 걸려있고, 천막이 늘어섰습니다.

그 안엔 전동차 수십 대가 주차돼 있습니다.

여기서도 호객행위가 이어집니다.

[타고 가세요. 걸어가면 2시간 걸려요.]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전동차 주차장을 방불케 합니다.

잇따라 길을 지나가는 전동차,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들은 뒤를 살피며 걷습니다.

마을 안에선 주민만 차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동차는 예외입니다.

취재진도 전동차를 빌렸습니다.

[전동차 B업체 관계자 : 면허증만 있으면 됩니다. 시속 20㎞밖에 안 돼요.]

실제 면허증을 확인하진 않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차를 빌리는 데 3분.

[전동차 B업체 관계자 : 일반 논밭길 저런 길 있죠. 위험하거든요.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고. 이게 끝이에요.]

전진 후진 등만 설명하고, 구체적인 안전 교육이 없습니다.

이 버튼 하나와 액셀만으로 자동차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처럼 면허가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막상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마음먹은 대로 운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문화재의 하나인 좁은 마을 길 때문입니다.

마주 오는 전동차는 물론, 사람도 피해야 합니다.

핸들 돌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어…(안 부딪혔죠?) 핸들이 안 돌아가네. (이 차 왜 이러지? 천천히 가겠습니다.)]

속도도 천차만별입니다.

가장 빠른 건 시속 5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박채영/대전 판암동 : 갈 때 계속 덜덜덜 하고 떨리고, 좌우로 움직일 때도 엄청 많이 돌려야 하고…]

하지만 트렁크에 걸터앉거나 초등학생 자녀에게 운전대를 잡게 하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을 내 한 고택.

전동차가 후진하더니 담벼락 기와를 부숩니다.

집주인이 있나 살펴보는 것도 잠시, 떨어진 기와를 얹고 자리를 떠납니다.

사람이 다치는 일도 있습니다.

[전동차 B업체 관계자 : 여기서만 다녀도 사람들이 논길이나 이런데 가끔 떨어지거든요. 운전 미숙으로 떨어지는데…]

현재 하회마을을 무대로 활동하는 업체는 6곳.

150여 대를 운영 중입니다.

[류상길/하회마을 주민 : 그냥 놀이동산 카 정도로 생각하고 달리니까 진짜 빨라요. 애들이 몰아 본다고 얘기하거든요? 그걸 또 시켜요, 부모님들이.]

더 큰 문제는 문화재 훼손입니다.

주차해놓은 전동차가 나무 울타리를 밟고 앞으로 넘어옵니다.

멈추지 않고 담장을 그대로 들이받습니다.

[여기서 튀어와가지고, 이 나무 넘어가고. (여기서 이 나무 넘어지면서 박았어.)]

사고가 난 곳은 1551년 만들어진 유성룡 선생 고택,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담을 새로 지었습니다.

[A씨/하회마을보존회 관계자 : 전화를 했더니 얘기도 안 하고 그냥 간 거지. 문화재가 훼손이 됐으니 이걸 복원해야 되잖아. 300만원 이상 이렇게 드니 탄 사람들도 힘들고.]

하회마을은 10년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하회마을 보존회는 최근 이런 일이 많아지면서 지정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B씨/하회마을보존회 관계자 : 원형을 많이 훼손했다 그러면 세계유산 협의회에서 조사를 해서 나중에 취소되는 경우도 뭐 한두 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업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문화재보호법에 관련 규정은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관계자 : 저희야 아예 운영을 안 하면 제일 좋죠. (하지만) 문화재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업을 못 하게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일부 업체는 주민의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업 중지 요구가 쉽지 않은 겁니다.

갈등이 이어지는 사이 하회마을은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회마을 상인 : 우리나라 사람들은 40분 만에 가 버리지만 외국 사람들 관점에선 안 그렇다니까. 일주일 동안 기거하면서 하회마을을 관찰하고 가는데…]

하회마을이 사랑받는 건 단지 전시장의 유물이라서가 아닙니다.

과거의 문화가 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느 관광지처럼 전동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보다는 문화재와 주민들을 존중하며 조금 천천히 그 진면목을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VJ : 박선권 /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인턴기자 : 황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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