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문제..백신 개발국들, '특허권 면제' 결단 필요한 때"

글 김향미·사진 김기남 기자 2020. 11. 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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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혜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지부 보좌관 인터뷰

[경향신문]

WTO, 면제 권고 가능한데
미국·일본 등 회원국 반대
자국·제약사 이익 좇다간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결말
한국, 특허 면제 지지해야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빠른 종식을 위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월2일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WTO에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관련 지식재산권(IP)이나 특허를 면제할 것을 회원국들에 권고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세계 90여개국을 비롯해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단체 300여개가 지지를 표명했다. WTO는 12월10일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논의한 뒤 17일 총회에서 공식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지부의 하신혜 대외협력 보좌관(사진)은 지난 26일 경향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나 “WTO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더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과 복제약, 의료기구가 생산될 것이고 이는 가격을 낮추고 보급량을 늘리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WTO는 2001년 ‘도하 선언’을 통해 에이즈, 결핵 등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질병의 퇴치를 위한 특허 면제를 가능하도록 했다. WTO 회원국들은 공익적 필요에 따라 강제실시권을 발동해 특허권자(제약사) 허가 없이 특허 면제를 진행할 수 있다. 하 보좌관은 “WTO 차원에서 각국에 코로나19 관련 특허 면제를 권고하면 각국은 개별적인 특허 면제를 진행하기보다 포괄적인 특허 면제를 통해 지식재산권 분쟁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절감하고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인도 매체 힌두비즈니스라인은 22일 “WTO TRIPS 위원회는 최근 비공식 회의에서 인도와 남아공 측의 제안을 검토했지만, 회원국들의 지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WTO 내에서도 입김이 센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캐나다 등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 보좌관은 이런 분위기가 몇몇 부자 나라들이 제약사들과 양자계약을 맺어 초기 백신 생산량을 쓸어가는, 이른바 ‘백신 민족주의’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또 연구개발 동기 부여를 위해서도 특허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 보좌관은 “각 나라와 제약사가 이익에 부합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선 보다 인도주의적 선택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하 보좌관은 백신 개발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 임상시험 중간결과 데이터를 공개해야 백신의 안전성을 따져볼 수 있고, 개발비용을 공개해야 가격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 보좌관은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연대와 공조가 필요하지만 지금 세계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에 빠져 있다”고 했다. ‘죄수의 딜레마’는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결국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유발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는 “코로나19 종식을 위해서 ‘작은 장벽’ 하나라도 깨자는 의미에서 한국을 비롯한 WTO 회원국들의 특허 면제 안건에 대한 지지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글 김향미·사진 김기남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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