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역사 - 11월30일∼12월6일] 동성애로 망한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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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교황이 동성커플도 하느님의 자녀이며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1900년 11월30일 파리에서 아일랜드 태생의 전설적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때문에 외롭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모습이다.
그것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와일드의 생애가 너무 화려해 그의 명작동화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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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교황이 동성커플도 하느님의 자녀이며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교황이 이처럼 동성애를 부분 인정하는 순간 강력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1900년 11월30일 파리에서 아일랜드 태생의 전설적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때문에 외롭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모습이다. 그것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와일드의 생애가 너무 화려해 그의 명작동화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해서다.
왕의 주치의도 겸했던 부유한 안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훤칠한 몸매(191㎝)의 미남에다 천재적 글재주까지 타고났던 것이다. 그처럼 행복의 3박자를 갖춘 인물이 고국서 쫓겨나 이국땅에서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말년에는 병이 나도 치료비가 없어 미남의 얼굴도 추한 모습이 됐다. 그 모습이 ‘행복한 왕자’의 동상에서 보석의 눈이나 귀 같은 것을 떼서 어려운 이들을 도운 바람에 고철로 폐기되기 직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 셈이다.
‘행복한 왕자’가 생전에는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살다가 죽어서 높은 곳에 찬란한 동상으로 서서 보자 불쌍한 사람들이 보여 눈물을 흘리듯 그 역시 철없이 자신의 유복한 가정 여건과 재능으로 너무 방만하게 살았던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시로부터 시작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걸작 소설과 희곡 ‘살로메’ 등을 쓰면서 그는 문단의 왕자 같은 존재가 됐다. 결혼해서 두 아들을 뒀고 그 아들들을 퍽 사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핏 완벽해 보이는 와일드에게는 양성애자라는 아킬레스건이 있었고 운명은 그걸 건드렸다.
이 최고 인기 작가는 나이 어린 옥스퍼드 대학생과 동성애에 빠졌고 당시의 법은 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2년간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자 그는 도망치듯 파리로 갔고 파리에는 가난한 실패작 인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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