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수다 사이' 조율하는 신경세포의 신비 [신경과학 저널클럽]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2020. 11. 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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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쩍 늘어난 업무량을 보며 좀 이르지만 연말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신경 쓸 곳도 많아지고 생각나는 분들도 많아지는 시기다. 머리를 쓸 일이 더 많아지고 유입되는 정보도 늘어나면 우리 두뇌는 어떻게 업무량 증가에 대처할까. 두뇌는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고, 신경세포는 시냅스라고 불리는 연결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두 신경세포 간에 정보를 전할 일이 자주 있으면 서로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강화되고, 그렇지 않을수록 시냅스는 약화된다.

이처럼 활성 수준에 따라 시냅스의 강도가 변하는 것을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부르며, 우리 두뇌가 여러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우리 두뇌는 ‘항상적 가소성’이라는 또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다. 신경세포는 우리가 잘 때나 활동할 때나 끊임없이 신호를 생성해 다른 신경세포와 주고받는다. 이는 마치 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은 활성이 많은 신경세포를 “수다스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임에서 너무 혼자 떠들다 보면 말을 좀 줄여야겠다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회의에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면 뭐라도 발언을 하고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신경세포도 우리가 말의 분량을 적절히 조절하듯 각자 정해놓은 수다의 적정선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신경세포의 가소성을 ‘항상적 가소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몸이 체온이나 혈당량 등을 일정하게 조절하려는 성질을 ‘항상성’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와닿을 표현이다.

미국 브란데이스대의 지나 투리지아노 교수는 항상적 가소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과학자다. 투리지아노 교수팀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 피질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왔다. 쥐를 빛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눈을 며칠씩 감고 있게 하면 일차 시각 피질 신경세포의 활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동물에서는 시각 피질로 들어오는 정보가 없어 신경세포의 활동이 감소하다가 이후에는 항상적 가소성이 작동해 시각 입력이 없더라도 활동이 다시 증가하게 된다. 그러다 동물이 다시 눈을 뜨게 되면 처음 하루이틀 동안은 갑자기 밝아진 시각 정보로 인해 신경 활성이 증가하다가 항상적 가소성의 작용으로 세포 활성이 다시 평균적인 수준으로 돌아오게 된다.

최근 투리지아노 교수 연구진은 항상적 가소성이 언제 작동하는지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전된 신경 신호 측정 기술을 활용해 5일 이상 계속해서 일차 시각 피질의 신경 신호를 측정하면서, 쥐의 눈을 감겼다가 며칠 후 다시 뜨게 하면 하루 중 어떤 시점에 신호가 항상적으로 변하는지를 검출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신경 활성을 증가시키는 항상적 변화는 쥐가 활동하는 중에만 일어났고, 신경 활성을 감소시키는 항상적 변화는 쥐가 자는 중에만 일어났다. 신경세포가 가지고 있는 적정선을 맞추는 작업이 활동과 수면 여부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 것이다.

이전에도 자는 일이 시냅스 가소성의 조정에 중요하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항상적 가소성 역시 활동과 수면 패턴에 얽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제시한 연구이다. 또한 잠을 자는 과정에서 신경세포 네트워크 수준의 변화를 통해 뇌 기능이 정리된다는 것은 꽤 인정받는 사실이지만, 개별적인 신경세포 수준에서도 활성 정도를 조율한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다.

추가 실험을 통해 연구진은 시냅스 가소성과 항상적 가소성이 다른 작동 원리를 가진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런 두 종류의 독립적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와중에 관련 있는 정보들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전반적인 뇌 활성의 균형은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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