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울린 진보학자 "총칼 없는 남남내전..진영 배제 두려운가"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 이후 공공성과 인간성이 상당히 복원될 것이란 국민적 기대가 컸다. 그만큼 실망의 정도가 크고 속도도 빠르다. 한국 민주주의는 기본 준거나 토대 지반이 흔들리는 중대한 위기 국면에 직면했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의 ‘일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높았던 기대감과 달리 한국 민주주의가 일상 궤도를 이탈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기간 우리 사회 진보적 가치를 대변해온 정치학자의 절박한 호소다.
이어 박 교수는 “스탈린이 항상 다수결을 강조했다”고 잘라 말했다. 소수 존중이 결여된 다수결은 독점과 독재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박 교수는 “다수결이 아니라 소수 존중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독재를 가르는 최후 준거”라며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은 소수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고 끝까지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미국, 독일, 그리고 북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합의제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라며 “민주주의의 꽃은 소수 존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선 정권이 소수의 지지 위에서 출발한다고도 했다. 상대적 다수에 불과한 득표를 바탕으로 권력을 창출했기 때문에 소수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입법이나 정책적 측면에서 연합 정부나 연립 내각을 통해 통합국가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안된다”며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진영대결, 진영논리, 남남내전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총과 칼만 안 들었을 뿐이다. 일단 상대방 제안을 듣지 않고 우리 제안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떨궜다.
박 교수는 “내부 진영에서 배제될까 두려운 것”이라며 “의회주의와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익을 실현해야 하는데 거꾸로 돼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단절됐던 연합·연립·연정의 정신을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지 못한다는 비판 의식이다. 박 교수는 “독재를 그렇게 반대한 86세대, 민주화 세대가 어떻게 그것을 답습하는가”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렇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너무 다르다”고 꼬집었다.
야권을 향해 “분권형 통제를 위해 투쟁하면서 어떻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결사 반대하나. 알 수가 없다”고 혹평했다. 야당은 2018년 7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출범 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줄곧 반대했으며 4월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을 조직해 해당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이어 “탄핵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국민은 없다”며 “새로운 보수, 정책 대안을 내놓는 보수가 아니면 국민이 다시 기회를 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장에서도 일부 여야 의원들은 진영논리에 따라 피감기관장들 편에 서며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국감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스스로를 희화화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박 교수는 또 △비례성의 원칙에 맞는 선거제도 및 권력 구조의 전면 개정 △상호 견제와 균형 원칙을 기반한 한 대화와 타협 △시민 사회의 자율성 및 공공성 회복 △책임성 강화를 위한 국회의원 이름을 앞세운 입법 관행화 등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의회가 주도하지 않는 국가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의회가 무논리와 무책임성, 무신뢰성을 넘어 책임과 역량을 같이 갖는 나라를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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