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이민2세대' 주한 외교관들이 말하는 '차별금지법'
[앵커]
국회에서 어떤 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6월, 이 10명을 가까스로 모아 발의한 법안이 있는데, 한번 쯤은 들어보셨을 차별금지법입니다.
성별과 나이, 출신 국가나 민족, 피부색이나 신체 조건, 장애나 혼인 여부 등 23개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죠.
그런데 기독교계 일부, 또 몇몇 보수단체 등이 법안 발의 전부터 거세게 반발해 왔습니다.
차별 금지 영역에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포함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반발이 부담스러웠는지, 차별금지법은 법사위에서 단 한 번 거론된 것을 제외하면 6개월째 아무 진전 없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차별금지법, 정말 그렇게 위험할까요.
앞서 우리와 유사한 우려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던 다른 나라들은 실제로 이 법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을까요.
문예슬 기자가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올해 결혼 26년째인 필립 터너 뉴질랜드 대사.
지난해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행사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해 화제가 됐습니다.
배우자가 같은 남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필립 터너/주한 뉴질랜드 대사 : "저에게는 동성 파트너, 히로시 이케다가 있습니다. 우린 26년 동안 전 세계를 함께 다녔습니다."]
주한 외교관 배우자는 '동반 가족'으로 분류돼 그에 따른 비자가 발급되는 데 동성 배우자에게 이런 지위가 부여된 건 터너 대사가 처음입니다.
[필립 터너/주한 뉴질랜드 대사 : "저의 남편인 히로시와 함께 해서 무척 영광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회가 더 많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1993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앞두고 성적 지향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기우로 그쳤다고 말합니다.
[필립 터너/주한 뉴질랜드 대사 : "모든 전통 가치들이 무너지고 가족이 무너질 거라고 말했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습니다."]
1950년대 동성애를 이유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체포해 화학적 거세를 목적으로 한 약물을 주입했던 영국.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구체적인 차별금지법을 갖고 있습니다.
주한 영국 부대사 본인도 아프리카 출신 이민 2세대입니다.
[닉 메터/주한 영국 부대사 : "차별금지법은 소수집단을 차별, 희롱, 따돌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사회 다수에게도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 19 시대일수록 차별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닉 메터/주한 영국 부대사 :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더 내부를 향하고 타인을 수용하는 것을 꺼립니다. 법률이 없다면 소수 집단은 취약한 채로 남겨질 겁니다."]
앞서 차별금지법을 만든 나라의 외교관들은 결국 이 법이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법이라고 말합니다.
[필립 터너/주한 뉴질랜드 대사 : "한국어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 사람, 사람입니다."]
KBS 뉴스 문예슬입니다.
촬영기자:박찬걸 유용규/영상편집:하동우/그래픽:고석훈
문예슬 기자 (moon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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