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카네기는 노동자들에게 악덕 기업주였다

김형민 2020. 11. 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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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는 노동자의 처지를 헤아리는 척했지만 사실 뒤에서 칼을 꽂았다. 반면 카네기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유럽 출신 이민자였던 조 힐은 노동자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조 힐과 전태일의 외침은 그렇게 꽃으로 피어났다.
ⓒDPA카네기

한국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는 인물이 있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로 미국에 건너가 아메리칸드림을 실현시켜 철강 제국을 일군 기업인.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는데 카네기는 바로 이 속담에 어울리는 삶을 살았단다. 무려 3억 달러의 재산을 기부하며 ‘정승같이 썼고’ 그러니 위인의 반열에 들었을 테지. 그러나 ‘개같이 돈을 번’ 과정이 어땠는지도 생각해봐야 해.

일단 카네기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악덕 기업주였다. “세계 최고의 철강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요구 강도를 높이고, 그들의 봉급을 삭감하면서도 친(親)노동자 성명을 발표하고 측근의 아첨을 받았다(〈신화가 된 기업가들 타이쿤〉, 찰스 R. 모리스 지음).” 즉 노동자의 처지를 십분 헤아리는 척했지만 사실은 노동자들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는 데 선수였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 주먹질조차 자신의 의사가 아닌 양 행동했지.

1892년 펜실베이니아주 홈스테드의 카네기제철소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당시 카네기는 대리인인 헨리 프릭을 경영자로 내세우고 유유자적 유럽에서 노닐고 있었지. 카네기만큼이나 냉정한 기업가였던 프릭은 노조 파괴꾼들을 고용해 파업 노동자들과 유혈 충돌을 일으킨다. 급기야 군대까지 출동한 끝에 10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빚어졌어. 미국 노동운동사에 유명한 ‘홈스테드 학살 사건’이야.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던 카네기는 프릭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모든 이에게 축하를. 인생은 또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으며 이탈리아는 참으로 아름답다(〈알려지지 않은 미국 노동운동 이야기〉, 리처드 O. 보이어 지음).”

그는 유혈 사태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듯한 모양새를 대외적으로 취했다. 물러서라는 자신의 명령이 너무 늦게 전달됐고 ‘사장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노동자들의 전갈을 자신 역시 뒤늦게 받았다며 안타까워했지만 그건 몽땅 허위였어. 한때 동업자이자 대리인이었던 프릭이 카네기와 갈라서면서 “정직한 구석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망할 도둑놈이었군(〈신화가 된 기업가들 타이쿤〉)”이라고 부르짖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지.

카네기는 홈스테드 학살 사건(사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모양새를 취했다.

카네기가 위인이 될 자격이 전혀 없는 악인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야. 당시는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시대로부터 놓여난 직후였고 최악의 자본주의가 천하제일의 미덕인 양 사회를 지배할 때였어. 카네기 역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자신의 이익을 실현했던 탁월한 기업가였지. 카네기나 록펠러, 모건 등등의 굵직한 이들 이외에 수많은 기업가도 마찬가지였다. 진종일 일을 시키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월급만 주고, 반항하면 사설 탐정단을 불러 총을 쏘고, 안 되면 군대도 부르는 게 그들의 일이었지만 그들은 대개 처벌받지 않았어. 그들의 행동이 당시 법으로는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고, 가끔은 돈의 힘으로 법망을 피하기도 했던 것이지.

총살대에서 생을 마치고 남긴 유언

반면 노동자들은 자본의 쳇바퀴를 조금이라도 벗어난 순간, 혹은 반항의 기미를 보이거나 스스로의 권리를 외치는 순간 범법(犯法)의 올가미를 목에 걸어야 했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감수해야 했다. 그중 조 힐(1879~1915)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의 본명은 조엘 이매뉴얼 하겔룬트. 스웨덴 사람이었지. 1848년 뉴욕에 도착한 카네기와 마찬가지로 찢어지게 가난한 유럽 출신 이민자로서 1902년 뉴욕에 상륙했지. 그러나 조 힐의 삶은 카네기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어.

하겔룬트는 미국 전역을 떠돌며 노동자로 살아간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하고 글도 잘 썼던 그는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분노했고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를 만들어 퍼뜨리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이미 있던 노래에 비틀린 가사를 갖다 붙이는 ‘노가바’의 명수이기도 했어. 이윽고 그는 기업가들과 정부 당국이 예의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지. 이름을 ‘조 힐’로 바꾼 것도 그 무렵이야. 그의 노래는 광산에서, 공장에서, 농장에서 널리 불렸다. ‘조 힐’이라는 이름 앞에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어. 노동자들에게는 친구 같은 이름이었지만 공장주나 광산 주인에게는 마치 ‘기생충’ 같은 존재였지.

조 힐이 유타주에 머물던 1914년 1월10일 한 식료품 가게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괴한이 ‘이제야 잡았다!’ 외치며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부자(父子)에게 총을 쏜 거야(강도가 아닌 원한 관계로 추정되었다). 그 아들이 쓰러지면서 역시 총을 쐈고 범인은 부상당한 채 도망쳤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 여자를 두고 싸움을 벌이던 조 힐도 총을 맞았다. 조 힐을 치료한 의사가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조 힐은 식료품 가게 총격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증거는 없었어. “동기도 없었고 살인 무기도 없었다. 그리고 목격자가 말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조가 범인의 체격, 또는 일반적 외모에서 살인자와 닮았다는 것(〈워블리스〉, 니콜 슐만 외 지음)”뿐이었다. 변호사들이 그의 무죄를 증명하려 애썼지만 조 힐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알리바이를 대지 않았어. 자신이 총을 맞는 상황에 이르게 한 여자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지.

유타주 정부와 기업주들에게는 손대지 않고 눈엣가시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야. 조 힐은 사형선고를 받았어. 저 유명한 헬렌 켈러와 미국 주재 스웨덴 대사, 심지어 미국 대통령 윌슨도 유타 주지사에게 조 힐의 사면을 탄원했으나 주지사는 완고했고, 조 힐은 총살대 위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지. 이런 유언을 남기고 말이다. “(전략)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몸을 재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상쾌한 산들바람이 내 먼지를 꽃이 자라는 곳으로 날려 보낼 것이다. 아마도 어떤 시든 꽃이 살게 되고 다시 꽃이 필 것이다(〈워블리스〉).”

ⓒDPA노동운동가이자 가수·작곡가였던 조 힐.

얼마 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카네기의 철강과 록펠러의 석유, 모건의 금융자본이 이룬 번영 위에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형성됐음을 떠올리면 이건희 회장도 오늘날 한국의 위상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호의호식과 무위도식을 오가는 무능한 귀공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장정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지. 동시에 우리는 카네기를 냉정하게 바라보듯 이건희 회장의 시커먼 그림자 또한 짚어야 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삼성이 고수해온 ‘무노조 경영’ 하나만으로도 이건희 회장은 19세기 미국의 자본가들보다 더한 퇴행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로.

동시에 올해는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외치며 분신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오늘날 아빠를 포함해 전 세계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는 범죄의 낙인을 무릅쓰고 (전태일 역시 경찰의 협박을 받았다) 노동자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함께하자며 손 내밀고, 그들의 주먹을 굳게 할 노래를 만들고, 단결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던 이들의 희생 위에 뿌리내리고 줄기가 굵어 맺혀진 열매들이란다. 전태일과 조 힐의 외침은 아직도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빛나는 희망이자 발판이자 방패가 되기도 하지. 그렇게 시든 꽃은 살아나고, 없던 꽃이 피어나는 것. 우리가 역사에 무심할 수는 있으나 무관할 수는 없는 이유다.

김형민(SBS CNBC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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