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선 "기억이 전부다"

장정일 2020. 11. 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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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장혜령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지영 그림

〈딕테〉(어문각, 2004)는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만 열 살 때인 1961년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던 차학경이 서른한 살에 쓴 유일한 창작집이다. 미술과 영화로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 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 3일 뒤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소설이라고도 하고 장편 산문시라고도 하는 이 장르 불명의 책은, 미국의 몇몇 대학이 아시아 출신 여성 작가가 쓴 중요한 탈식민주의·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넘나들며 두 언어의 차이를 놀이화하거나 문법과 시제를 파기하는 식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번역본으로는 그런 재미를 누릴 수 없다. 〈딕테〉에는 라틴어와 한자가 등장하고, 사진·도표·지도·인체도·서예 등의 시각적 자료와 친필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차학경에게 기억과 글쓰기는 이음동의어이며 원제 ‘DICTEE’가 프랑스어로 ‘받아쓰기’를 뜻하듯이, 그녀에게 작가란 받아쓰는 자이다. 이런 인식은 결코 낯설지 않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는 점토와 비석 그리고 노래와 춤 속에 자신의 기억을 저장해왔다. 인간은 기억하기 위해 쓰고, 쓰면서 기억을 이어간다. 지은이는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인 제9장을 한 편의 우화로 대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한 소녀가 어머니의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②소녀는 어느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여자를 만난다. ③우물물을 긷는 여자가 소녀에게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처방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④그런 다음, 우물물을 긷는 여자는 소녀에게 빨리 집으로 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알려준 것을 “모두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⑤소녀는 감사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이 우화는 보물(치료약)을 찾아 나선 영웅(소녀)이 조력자(우물물을 긷는 여자)를 만나 임무를 완수하는 뭇 민담의 원형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은이가 이 우화로 자신의 책을 마무리한 이유는 예사롭지 않다. 소녀의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약과 처방문이 아니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소녀는 처방문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장혜령의 〈진주〉(문학동네, 2019)는 애초에 에세이를 쓴 것인데 출간하면서 소설로 둔갑했다. 이런 사정은 독자가 책을 손에 들고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장르라는 기표가 그다지 자명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해주는 동시에, 장르라는 관습에 저자 고유의 사유와 표현을 규제받아온 그동안의 글쓰기 관행을 반성하게 해준다. 전통적인 장르 이론에서는 어느 장르에 속하기 위해 반드시 그 장르의 특성과 관습을 고수해야 한다. 예컨대 소설은 작가가 제작한 허구이며 독자는 소설을 사실로 오해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진주〉는 민주화운동으로 수배와 옥고를 치른 아버지에 대한 지은이의 기억이 고스란히 활자화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본문 속에는, 지은이가 초등학교 시절에 쓴 일기와 운동권의 유인물 원본, 여러 종류의 사적이고 공적인 사진, 언론 보도, 어머니가 옥중의 남편에게 쓴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이런 원 자료와 시각 자료는 지은이의 기억을 뚫고 나온 ‘사실’로 독자 앞에 제시된다.

오늘의 글쓰기에서는 장르라는 규칙이 의도적으로 공격받거나 경계 없이 허물어지고, 작가가 자신의 글에 어떤 장르명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장르가 정해진다. 부모가 자신이 갓 낳은 아기에게 철수라고 부르면 철수인 거고, 미애라고 부르면 미애인 거다. 거기에는 어떤 필연도 의미도 없다. 〈진주〉는 지은이의 초고를 본 어느 유명 작가가 “소설로 이름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바람에 소설이 되었다.

구성은 사유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기표가 내장한 기표 고유의 의미가 사라지는 이런 사태를 포스트모던한 특징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소설 자체가 그렇게 태어났다. 소설은 세상의 모든 장르와 잡다한 기술(記述)을 모두 집어삼키며 자신을 확장해온 잡식성 강한 장르이자 글쓰기의 포식자였다. 이런 발생사를 떠올려본다면 허구의 양식에 반대하는 소설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버지의 생일날, 초등학생이던 딸은 스누피가 그려진 스프링 수첩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그 수첩을 딸에게 되돌려주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했다. “경찰 아저씨가 아빠를 갑자기 붙잡을 때가 있지. 그때 수첩을 한꺼번에 삼켜버려야 하거든. 친구가 있으니까. 잡아가버리면 안 되니까.” 지은이의 글쓰기는 그때 탄생했다. “수첩을 돌려받은 딸은 그것을 자신의 비밀을 적는 용도로 쓴다.” 작가의 탄생을 보여주는 이 일화는 〈진주〉에 아버지의 열망과 딸의 비밀이 주름처럼 겹쳐 있다고 말해주는데, 딸은 자신의 비밀을 희미하게 처리했다. 지은이의 아버지는 386 운동권의 성골(聖骨)에 속하지만 ‘한자리’를 하고자 자신의 희생을 팔지 않았다.

〈진주〉는 순탄하게 쓰인 책이 아니다. 지은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십 년 동안 발표가 기약되지 않은 여러 종류의 글을 쓰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은 도저히 글로 쓸 수 없었다. “어느 날, 대답과도 같은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차학경의 〈딕테〉. 그 속에서 언젠가 나와 같은 물음을 붙잡은 적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보았다. 책을 펼쳐 읽으면 문장마다 납작하게 눌려 있던 글자의 혼이 살아나는 것을.” 지은이가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떤 언어”로 꺼낼 수 있는지 고민할 때 유고나 다름없던 〈딕테〉가 돌파구로 다가왔다.

솔직히 〈딕테〉는 뛰어난 작품도 아니고 재미있지도 않다. 이보다 더 재미있고 뛰어난 현대문학 작품이 즐비한 참에 절판되기까지 한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당연히 말리겠다(아니면, 내버려두겠다). 다만 아직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두 부류의 예비 저자들에게 이 책은 섬광과 같은 영감을 준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허구를 꾸미는 데 한계를 느끼는 사람. 소설 쓰기와 상관없이 내 삶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떻게 쓸지 막막하다는 사람. 난관에 가로막힌 두 부류의 예비 저자들에게 차학경은 글쓰기에서는 “기억이 전부다”라고 조언한다. 〈딕테〉는 글쓰기란 곧 구성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구성을 하다 보면 구성이 사유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글쓰기는 문장이라고 말하는 교사도 많지만, 이럴 때는 구성이 곧 문장이 된다. 그리고 현대문학에서 문장은 글(활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딕테〉가 장혜령에게 돌파구를 열어주었듯이 이제는 〈진주〉가 두 부류의 예비 저자들에게 영감이 되어줄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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