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뉴 노멀'에 적응하기 위해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0. 11.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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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20년은 다른 어떤 해보다 힘든 한 해였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팬데믹으로 인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미국인들의 경우 10명 중 7명이 팬데믹을 올 한 해 중 가장 힘들고 큰 스트레스를 주었던 일로 꼽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 조치가 처음으로 도입되던 올 3-4월에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당시 학교가 급작스럽게 문을 닫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요청하면서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처음에는 길어야 3주 정도일 거라 예상했던 락다운이 한 달, 두 달을 넘어 계속해서 연장되기 시작했다. 많은 일정들이 취소되거나 조정되었고 언제쯤 되어야 다시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을 크게 느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봄 여름을 보낸 후 지금은 어떤지 생각해보았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인 만큼 나 또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음을 느낀다. 재택근무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동료 연구원들과 전화 통화나 화상 미팅을 하는 것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도 통화 횟수가 늘었고 어느새 이전보다 더 자주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학회나 워크샵의 경우 이전처럼 비행기를 타고 호텔비를 지출하며 힘들게 가지 않아도 되어서 이 점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다시는 가족과 친구를 보지 못 하면 어떡하지, 협업이 어려워지면 어떡하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지금은 찾으면 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기 마련이고, 어느덧 다시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기에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고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떤가? 

불안에서 적응으로

최근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현재 상황에 잘 적응했는지 살펴본 연구가 나왔다. 서던 캘리포니아대의 연구자  에릭 아니시치는 미국에서  41개의 서로 다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3월 초부터 열흘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속한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통제감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인 ‘자율성’의 변화를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사람들이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통제감과 자율성을 빠르게 회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팬데믹과 락다운 초반에 통제감과 자율성의 하락을 겪었다가 일주일 정도 후부터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성격 특성 중 신경증(부정적 정서성 또는 정서적 불안정성이라고 불리는 특성으로 불안과 걱정이 많고 위험 지각에 민감한 특성)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빠른 반등을 보였다는 점이다. 즉 평소 성격적으로 예민하고 걱정이 많았던 사람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통제감과 자율성을 더 빨리 회복하며 좋은 적응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나를 지켜주는 불안과 예민함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신경증은 잠재적 위험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비하는 데 특화된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고가 터졌을 때, 건물에 불이 나서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든가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등 위험 신호가 감지될 때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런 신호를 훨씬 예민하게 감지한다. 평상시에도 잠재적 위험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생겨나는 감정인 불안이 높은 만큼 이런 예측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탁월하게 감지해낸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평소에도 예컨대 혹시 우리 건물에서 불이 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을 많이 하고 실제로 타는 냄새를 맡았을 때 “어디선가 타는 냄새 나지 않아?”같은 말을 가장 먼저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신경증이 낮은 사람들은 걱정이 없고 태평한 편이기 때문에,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괜찮지만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위험 지각이 늦을 수 있다. 이들은 예민한 사람들이 앞서 위험을 감지하고 나면 “타는 냄새? 잘 모르겠는데? 별 거 아닐 거야~” 같은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신경증의 높낮이에 따라 위험 지각과 그에 대한 대처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신경증이 높은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되곤 한다.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이렇게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아마 걱정도 더 많겠지만 그만큼 적응도 더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걱정이 많은 만큼 방역 수칙을 잘 준수해서 여전히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통제감을 느끼고, 또한 항상 최악을 예상하는만큼 상황이 더 나빠져도 크게 놀라거나 좌절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위험 지각과 대처에 특화된 성격 특성인만큼 평소에는 귀찮기 그지없는 걱정 많고 예민한 특성이 실제 위험한 상황에서는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역시 쓸모없는 성격이란 없는 것이다. 

불안이 지나간 자리에는

물론 불안을 계속해서 키우며 불안에 집어삼켜지는 것은 적응적이지 않다. 걱정과 불안이 높은 성격 특성이 존재하는 목적은 빠른 현실 지각 +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불러오는 것임을 기억해보자. 불안을 행동으로 바꿔 문제 해결과 함께 해소해 나가면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통제감과 자율성, 적응과 성장이 자리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불안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올 한 해 불안했다면 그건 그만큼 내 몸과 마음이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는 증거다.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해주도록 하자. 

※참고자료

Anicich, E. M., Foulk, T. A., Osborne, M. R., Gale, J., & Schaerer, M. (2020). Getting back to the “new normal”: Autonomy restoration during a global pandemic.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05, 931-943.

Friedman, H. S. (2019). Neuroticism and health as individuals age. Personality Disorders: Theory, Research, and Treatment, 10, 25-3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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