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77] 길 위의 사람들
코로나 이후, 여행 유튜브를 자주 봤다. 그렇게 유튜버 ‘디젤 집시’를 만났다. 그런데 몇 편 영상을 보고 나서,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여행자가 아닌 대형 트럭을 타고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을 수시로 넘나드는 운송 노동자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시가 폐쇄된 후에도 그는 양배추⋅케일 같은 식품과 곡물 등 다양한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광활한 대륙을 달리며 경상도 사투리로 전하는 그의 세상 이야기는 중독성이 있었다. 추울 때는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져 코털까지 얼어버리는 캐나다 로키를 넘어 위니펙까지,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하루 천 킬로미터 이상, 길게는 몇 주씩 달려가는 그는 길 위의 사람이었다.
코로나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의료와 교육, 먹거리, 운송 등의 주요 종사자들을 더 큰 핵심 인력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를 지키고 유지하지만 쉽게 눈에 보이지 않던 인력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 대부분이 트럭으로 운반되고 있으니 트럭에 길을 양보해달라는 캐나다 트럭협회 캠페인은 이 남자가 하는 ‘업’의 본질을 보여준다.
홀로 수십만 킬로를 달리던 고독한 한 남자의 꿈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길 위를 실컷 달리는 것. “언젠가 타려고 하겠지만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네”라는 할리데이비슨의 광고 문구처럼 세상에 ‘언젠가’라는 요일은 정말 없는 걸까. 휴게소의 한 상점에서 “돈 없으니 이거라도 살까?” 하고 웃으며 할리데이비슨 모형을 만지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는다.
‘나는 길 탐식가다. 세상의 모든 길을 맛보리라’는 요절 배우 리버 피닉스의 말은 긴 시간 내 프로필 속 문장이었다. 달리는 그의 트럭을 보며 자주 위안 받았다. 한 남자의 극진한 노동이 내겐 위로였으니 그에게 진 빚이 많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꿈이었다는 10만 구독자가 달성됐다. 할리데이비슨과 실버버튼, 하늘에서는 이루어진 소원을 만끽하며 할리를 타고 더 행복하게 달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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