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아파트 못사주는데 주식이라도.. 10대 '주린이' 늘었다

변희원 기자 2020. 11.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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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성년 증권계좌 3.7배 늘어

지난 9월 MBC ‘공부가 머니’에는 성적이 전국 최상위권인 학생들이 출연했다. 제작진이 “공부의 힘이 어디서 나오냐”고 묻자 국제고에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증권 계좌.”

그는 얼마 전 생일날 부모에게 주식 계좌를 선물 받았고, 용돈을 계좌에 넣어 스스로 주식 투자를 했다. 37만원에서 시작해 방송 촬영 당시 잔고는 53만원. 수익률이 44.3%에 달했다. 그는 “경영이나 경제 쪽으로 입시를 준비 중”이라며 “용돈을 주식에 투자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지난 9월 한 방송에 출연한 고등학생은 “주식 투자를 하면서 경제 공부를 한다”고 했다./MBC 화면

‘주린이’(주식+어린이의 합성어)는 주식 초보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그런데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 주린이가 늘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미성년 신규 주식 계좌 개설 건수는 29만1080건이었다. 월평균 3만6385건으로 작년 월평균(7778건)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미성년 주식 계좌의 예수금 총액도 올해 들어 8월까지 2751억원 증가했다. 매달 평균 344억원씩 늘어난 셈인데, 작년 한 해 늘어난 예수금 총액(370억원)에 맞먹는다. 부모나 조부모에게 주식을 증여받은 경우도 있지만, 이 통계엔 직접 투자에 나선 고등학생도 포함됐다. 미성년자라도 증빙 서류를 갖춰 보호자와 함께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주식 계좌를 만들 수 있다.

교복 입고 주식하는 시대

이해선(18)양은 올해 난생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모아둔 용돈으로 카카오 주식 한 주를 샀다. 이 양은 “주식에 대해선 아직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내가 많이 쓰는 카카오의 주식을 사 본 건데 14만원대였던 게 지금 37만원대까지 올랐다. 설 세뱃돈 말고는 이 정도로 큰돈이 생긴 게 처음이다. 추석 때 받은 용돈에 다음 설에 받을 용돈까지 합쳐서 애플 주식도 사고 싶다”고 했다.

“학생이 돈 쓸 데가 어딨냐고 하지만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대학 갈 때쯤이면 여행도 다니고 사진도 찍고 싶은데 그걸 다 부모한테 의지할 수 없어요. 100%는 아니어도 경제적 독립을 원해요.”

투자를 위해서 주식이나 경제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들도 생겨났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학내 경제 동아리에 들어가 모의 주식 투자를 하거나 유튜브로 경제·주식 상식 등을 배운다. 주식 관련 인터넷 카페에선 “주식 시작하려는 고등학생인데 책이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볼 수 있다. 경제교육 강사인 윤성애씨는 “올해 들어 고등학교 경제 동아리 같은 곳에서 주식에 대해 알려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이 학생들은 이미 기본적인 경제 지식을 갖추고 있고, 부모도 자녀가 금융 투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편”이라고 했다.

경제적 독립 꿈꾸는 10대

한창수(48)씨는 지난 5월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증권 계좌를 열어주고 10만원으로 원하는 주식을 사게 했다. 아들이 산 것은 게임 회사인 블리자드의 주식. 한씨는 “어차피 나중에 해야 할 텐데 남들보다 빨리 배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을 사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스스로 돈을 모을 수 있는 법이라도 알려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계좌에 매달 10만원씩 넣어준다.

부모는 10대 자녀의 주식 투자에 호의적인 편이다. 자녀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증권사나 은행에 데려가는 경우도 많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한창 일을 할 때는 고금리 시대였으나 이들의 자식뻘인 에코 세대(80년대생)부터는 저금리를 경험했다. 앞세대가 저축만으로 자산을 모을 수 있었다면, 뒷세대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선 집 한 채도 사기가 어렵고 그만큼 노후 대비도 어렵다. 베이비붐 세대가 자식에게 원한 게 명문대 진학이었다면, 에코 세대는 자식에게 경제적 독립을 바란다. 윤씨는 “주식⋅금융 교육을 요청하는 부모 중에는 고소득·고학력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들은 자녀가 금융 투자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성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금융에 대해 무지해서 나중에 큰돈으로 잘못된 투자를 하는 것을 막자는 목적도 있다”고 했다.

금융 교육의 대상 연령도 점점 낮아져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주린이라는 말 그대로 ‘어린이'가 주식을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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