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남의 돈 우습게 아는 사람들

최규민 경제부 차장 2020. 11.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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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못 줄 거면 망하라”더니 이제는 “세금 못 내면 이사 가라”
땀 흘려 돈 번 적 없는 사람들이 남의 돈을 너무 우습게 안다

부동산 출입을 세 번 했다는 방송기자 A씨는 24일 페이스북에 ‘종부세를 어떻게든 과장해야 하는 기자들의 흔한 매뉴얼’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을 직접 확인했다”며 대치동 선경 45평 아파트는 시세 34억원에 종부세 150만원, 잠실 리센츠 49평 아파트는 시세 27억원에 종부세 85만원, 래미안 대치팰리스 33평은 시세 31억원에 종부세 230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25억원쯤 하는 아파트는 지난해 15만원 나왔다가 올해 60만원쯤 나온 게 현실인데, 해마다 종부세에 놀라는 게 아니라 (종부세 공포를 과장하는) 기자들의 상상력에 놀란다”고 했다. 그의 글은 곧바로 여당 의원이 퍼 갔고, 친정부 매체에도 실려 지지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정부가 전세난 해결을 위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모습./뉴시스

A씨가 어떤 ‘특수 관계인’들에게 확인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제시한 숫자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예로 든 대치동 선경아파트의 종부세를 세무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구해보면 1가구 1주택 단독 명의 기준으로 올해 774만원, 내년에는 1540만원이 나온다. 잠실 리센츠는 올해 274만원, 내년 613만원가량 종부세를 내야 한다. 래미안 대치팰리스는 올해 291만원, 내년에는 845만원쯤 된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A씨가 아예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물어본 지인들이 공동 명의이거나 고령자, 장기 보유 공제를 많이 받았다면 이런 액수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특수 사례를 놓고 종부세 부담이 적다고 주장하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가령 억대 연봉을 받는 근로자 중에는 이런저런 공제를 받아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사람이 매년 1300명쯤 된다. 그렇다고 ‘억대 연봉자는 세금을 안 낸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A씨 글에서 더 놀라운 건 ‘집값이 올랐는데 그깟 세금 몇 백만원 더 내는 게 대수냐’는 태도다. 남의 돈은 쉽고 우습다는 생각이 깔려있지 않고선 나오기 어려운 발상이다. 이런 인식이 이 정권 인사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종부세가 두 배 오른 사람들은 강남 부자들”이라며 “집값이 뛴 만큼 세금을 내는 게 옳다”고 했다. 하지만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에 대해 1년 만에 두세 배씩 세금을 올리는 나라는 적어도 현대 문명국가 중엔 없다. 2018년 프랑스는 유류세를 3~5% 인상하려다 폭동을 맞았고, 올해 초 레바논은 스마트폰 메신저에 월 6달러 세금을 매기려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터졌다.

정권 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달이 난 것도 결국 남의 돈을 우습게 알았기 때문이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에 자영업자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 칠 때 이 정부 지지자들은 “그깟 최저임금 몇 푼도 감당 못 할 거면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최저임금 1000원이 한 달이면 수십만~수백만원 인건비 부담으로 쌓이고, 그게 자영업자의 생사를 가른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그 결과 실제로 많은 자영업자가 가게 문을 닫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세금 못 낼 거면 집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한결같이 단순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니 남의 돈 쓰는 데도 거침이 없다. 표를 얻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무차별 살포하고, 수천억원이 투입된 원전 건설을 멋대로 중단하고, 10조원을 더 들여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겠다는 발상은 제 돈이 아니라 생각하니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잇속을 챙길 때는 관사 재테크까지 동원할 만큼 필사적이다. 평생 땀 흘려 돈 벌어 세금 내본 적 없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요직을 차지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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