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계산서 떠넘기는 가불 정권

김승범 산업1부 차장 2020. 1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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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한국전력은 올해 안에 전기 요금을 올릴 계획이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원전 비율을 낮추고 발전 단가가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부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이 이번 달 정기 이사회에 전기 요금 개편안을 상정하지 않으면서 연내 요금 인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한전이 다음 달 임시 이사회를 열어 개편안을 통과시킬 수는 있지만 경기 침체, 부동산발(發) 민심 이반 등을 감안하면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승인할 상황이 아니다. 내년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년은 대선이 있어 정부가 표를 깎아 먹는 전기 요금 인상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실 정부는 탈원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우려해 전기료 인상에 미온적이었다. 정부는 2017년 탈원전 정책을 도입할 당시 “원전을 없애도 전력 수급에는 이상이 없으며 현 정권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현 정부 임기 만료 이후다. 현재 24기인 국내 원전은 2034년 17기로 줄어든다. 계획대로라면 국내 발전 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19.2%에서 2034년 9.9%로 반 토막 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15.1%에서 40.0%사 돼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탈원전 정책이 지속될 경우 전기 요금이 2017년 대비 2030년 23%, 2040년 38% 인상될 것으로 예측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무리한 탈원전 정책에 따른 비용 폭탄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라며 “탈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기 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안전 장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책임은 뒤로 떠넘기는 게 체질화돼 있다. 7월 말 시행한 임대차법으로 세입자는 2년 전세 계약이 끝나면 2년 연장할 수 있다. 계약을 연장한 세입자는 당장은 전세난을 피해 한숨 돌리겠지만 2년 후에는 대폭 오른 전셋값을 맞닥뜨리는 처지가 된다. 연장된 2년 만기가 돌아오는 2년 뒤 임대차법의 부작용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난 뒤다.

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를 법으로 관리하는 재정 준칙도 마찬가지다. 국가 채무 비율을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통용되던 국내총생산(GDP)의 40%에서 60%로 늦춰 잡으면서 시행 시기는 2025년으로 미뤘다. 현 정부는 빚을 늘려 돈을 쓰고 부담은 다음 정부로 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판 뉴딜’ 등 대형 국책 사업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 약 120조원이 더 들어가도록 설계돼 있다.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이런 모습의 밑바탕에는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성,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함이 깔려 있다. 정부가 떠넘긴 책임은 누가 부담하나.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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