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심상석(心象石)

김지연 전시기획자 2020. 11.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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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영태, 心象石 78-4, 1978, 펄프지에 연필, 122×168㎝

아포칼립스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에서 세상의 근본단위는 ‘설화’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설화를 만들어내는 시나리오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데, 그로부터 등장인물들의 실존에 대한 고민이 출발한다. 누군가는 체제에 순응하고, 누군가는 이용하고, 누군가는 전복을 꿈꾼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시스템의 견고함 아래 다들 좌절하고 포기할 때, 일군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답게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정체불명의 힘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이 세계를 온전히 끝장내기 위한 ‘무기’로서 크고 작은 설화를 획득해 나간다. 등장인물 ‘김독자’가 확보한 설화 가운데 유독 눈을 끈 것은 ‘돌의 설화’였다. 이 설화를 사용하면 그의 존재감은 마치 돌처럼 변해서, 주변인들이 그를 ‘돌’ 보듯 한다. 적으로부터 나를 감출 수 있는 놀라운 은신술이 ‘돌’이 되는 일이라니, 한없이 명쾌하다.

작가이자 문화기획자, 민중문화운동가로 활동했던 문영태는 1977년부터 1983년까지 펄프지에 연필로 ‘돌’을 그렸다. 초기에 그가 포착한 돌의 모습은 산에서 들에서 흔히 만날 법한 돌이다. 다만, 마치 하늘의 별자리를 기록한 것처럼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린 모양이, 스스로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 그 자체임을 선언하는 것 같다. 이후 작가는 풍화의 시간에 놓여 있는 돌에 인고의 세월을 사는 생명의 마음을 새겨 넣었다. 그는 돌의 역사 위로 노인들의 표정을 담고, 공권력의 폭력에 상처입은 이들의 뒤통수를 담는다. ‘심상석’이라고 칭한 그의 돌 그림에는 시대가 겪는 주름진 상흔의 역사가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침침한 눈들은 좀처럼 돌에 숨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읽지 않으려 한다. 목소리를 감춘 돌은 여전히 발길에 차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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