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무주에서 소백산 깊은 산중으로

남상훈 2020. 11. 2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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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이틀이나 걸릴 거리
잊지않고 찾은 마음세계, 바로 詩

이쪽 ‘무진장’에서 경상북도 풍기까지, 옛날 같으면 이틀이 걸릴 거리다. 압치터널이 보인다. 여기 넘으면 영동, 옛날 무주 사람들은 대처로 나가려면 반드시 영동을 거쳐야 했다. 영동 지나면 바로 영남으로 빠지는 길목, 김천 40㎞, 대구 109㎞라는 표지가 보인다.

임계터널, 가리터널 지나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 황간 인터체인지 쪽으로 들어선다. 추풍령이다. 다시 김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오면 길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저쪽 편은 충주 쪽, 이쪽 편은 김천 쪽, 풍기로 가려면 김천 쪽을 택해야 한다. 벌써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땅이름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선산이라는 곳과, 또 상주터널 ‘1685m’가 나온다. 선산 휴게소를 지나친다. 선산 땅은 그야말로 ‘낙지’하고 처음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그러고도 풍기는 아직 멀다. 거기에는 나의 대학 동창, 그렇지만 동창이라기에는 나이 많은 형님 한 분이 산중에 숨어 있다. 나는 대학 때 이 형님 얘기를, 시청 공무원 생활 얘기며, 한문 공부 얘기며, 사는 것 어렵다는 것까지 많이도 들었다. 학교 다닐 때 결혼을 하셨다. 나는 그때 많지 않은 하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길은 멀다. 나는 여기 경상 내륙의 지명들을 즐겨 적어본다. 군위, 도계, 영천과 영덕 분기점, 동상주, 나각산 터널, 영덕과 안동의 분기점이 나온다. 여기도 이렇게 많은 ‘골’들이 산속마다 숨어 있었더라니. 의성휴게소, 안사 1터널, 2터널, 그리고 안평터널은 길다.

원주, 대구와 영주 분기점에서 나는 원주 방향을 택해 가다 서안동, 남안동 쪽으로 꺾어진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하다. 고속도로 길가에 “깜짝 졸음, 번쩍 저승”이라는 표어가 보인다. 절로 웃음이 인다. 실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눈 깜짝할 사이다.

앗, 낙동강이다. 풍산대교 ‘610m’를 건너는데 늦가을 바싹 마른 낙동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낙동강, 하면 나는 요즘 잃어버린 강의 풍정을 생각한다. 그러나 강은 물을 잃고도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다.

산산산, 너머너머, 산산, 너머, 산산산산산, 너머너머너머 산…. 이번에는 나는 또 차상찬, 박달성이며, 김기전이며 옛날 1920년대 ‘개벽’에 국토 순례 산문들을 줄기차게 써나갔던 천도교 운동가들을 생각한다. 그네들이 돌고 돌던 들 빼앗긴 우리 국토는 오늘 이 눈에 보이는 산과 들보다 너무나 아름다웠으리라. 이제 풍기 9㎞, 원주 92㎞, 나는 영남 내륙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산령 몇 개만 넘으면 된다. 동해 바다가 보일 수도 있을 듯한 영주, 영덕, 그 가까운 풍기에 그리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동양대학교라, 요즘 신문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대학 표지판을 지나쳐, 소수서원, 부석사 방향으로 곧장 나아간다. ‘연합’에 있는 권영석이 몇 번 전화했지만 내 차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는 풍기에서 소수서원까지 그 두 시간 거리를 그냥 나를 기다리며 걸어가고 있다. 옛날 대학 1학년 때 히치하이킹하던 추억 살려 도중에 손을 드는 그를 태워 주어도 좋으련만, 아무래도 나는 시간이 늦을 것 같다.

태장천교 지나 왕당천 쪽으로 계속 나아가 영주, 순흥, 부석 갈라지는 곳에서 부석 방향으로 역시 곧장 가자 드디어 영석 형과 명호 형님 기다리는 소수서원 주차장이다. 옛날 스무 살 때 만난 ‘친구들’이 오십 대 후반, 칠순 가까운 나이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셋이서 국립공원 소백산 중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산중 거사는 스물네 해째 한문 공부만 하며 세월을 낚고 계셨댔다. 날은 이미 캄캄해졌다. 저쪽 하늘로 별빛이 선명하다.

이 산중 주인의 ‘박주산채’를 안주 삼아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고, 나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는 형님. 그러나 다행히 나는 이분을 잊지 않았다.

밤은 깊어가도 또 깊어간다. 시(詩)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이 깊은 산속을 견딘 명호 형님과 그를 잊지 않은 영석 형의 마음 세계가 시, 바로 그것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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