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투잇] 누가 '멍든 바나나'로 유니폼을 만들었어?!

류청 2020. 11. 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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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류청, 김재홍(영상)]

포포투가 매주 축구, 스포츠와 관련된 재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포포투 스토리 투나잇, 포스투잇!<편집자주>

유니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2019-20시즌 아스널 원정 유니폼을 보고 과일을 떠올렸을 겁니다. 어떤 과일이냐고요? 바로 바나나입니다. 그것도 멍든 바나나죠.

이해가 안 된다고요? 지금 나오는 유니폼이 바로 그 친구입니다. 아스널은 이 유니폼을 공개하면서 구단 영웅인 이안 라이트를 현재 선수들과 함께 모델로 썼습니다. 사진을 잘 들여다보면 라이트가 입은 유니폼과 2019-20시즌 유니폼이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유니폼은 1991년에 아스널이 입었던 유니폼을 소위 ‘오마주’한 것입니다. 아스널 유니폼 스폰서 아디다스는 2019-20시즌부터 다시 아스널을 후원하게 되면서 과거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유니폼을 다시 가져오는 상징적인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스폰서 회복을 기념한 것은 아닙니다. 멍든 바나나 유니폼은 당시에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악’과 ‘최고’라는 평이 엇갈렸습니다. 양 쪽 모두 파격적이다라는 사실에만 동의했죠.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 발매된 이 유니폼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유니폼 디자이너가 시대를 앞서갔다고 볼 수 있겠죠? 이 유니폼은 과거 버전과 현재 버전이 모두 사랑 받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입고 다닐 정도로 예쁜 유니폼으로도 손꼽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멍든 바나나를 낳은 건, 갈매기 유니폼?
멍든 바나나는 파격적이었지만, 이 유니폼이 나온 시대에는 이런 유니폼이 많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미친 유니폼의 시대'로 불릴 정도로 창의적이고 괴상한 유니폼이 판을 쳤습니다. 스널 멍든 바나나 유니폼은 물론이고, 헐시티 호피 무늬 유니폼, 노리치시티 새똥 유니폼 등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이런 유니폼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이들을 낳은 선구자는 따로 있습니다. 선구자를 만나려면 ‘유로 1988’로 가야 합니다. 서독에서 열린 유로 1988은 ‘오렌지 삼총사'로 불리는 뤼트 훌리트와 마르코 판 바스턴 그리고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이끄는 네덜란드 대표팀이 우승한 대회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아디다스는 네덜란드 대표팀과 서독 대표팀에 신선하면서도 약간은 기하학적인 유니폼을 공급했습니다. 아마 두 유니폼을 보면 ‘아 이거!’라고 말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당시 독일 대표팀 유니폼이 더 낯익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서독이 이 유니폼을 입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독일 대표팀이 이 유니폼을 오마주한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국기 색상이 단색으로 바뀐 게 둘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하학적인 유니폼은 당시엔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큰 대회가 열리면 유니폼 디자인을 바꾸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감독이자 서독 축구계 최고 스타인 프란츠 베켄바워가 월드컵에서도 이 디자인을 입길 바랐습니다. 베켄바워는 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이끌고 우승까지 차지합니다.

독일은 통일 이후 한 첫 번째 A매치인 잉글랜드 경기에서도 이 유니폼의 초록색 버전을 입었습니다. 물론 결과도 가져갔죠.

유로 1988에서 서독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던 팀은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는 축구도 잘했고 유니폼도 상당히 멋졌습니다. 이 유니폼은 . 서독 유니폼보다 더 대단했고, 과거 네덜란드 유니폼들이 지닌 맥락을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진적이었습니다.

이 유니폼은 ‘ㄱ’ 혹은 ‘화살표’가 연달아 이어진 유니폼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유니폼을 ‘갈매기 유니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 영국 기자는 이 유니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두 용감한 유니폼은 당시 준결승전에서 만났습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에서도 중요한 경기였지만, 유니폼 역사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경기였습니다. 이 두 유니폼이 지닌 용기는 상상력을 사로잡으며 축구 디자인의 미래를 열었습니다. 경기는 네덜란드가 이겼죠!

아디 다슬러의 ‘반항아’ 아들이 디자인 혁명을 낳다
모든 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유니폼은 역사적인 흐름과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실 유니폼 세계는 1970년대 전까지는 매우 평온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 팀 엠블럼과 제조사 엠블럼을 넣었죠.

1980년대에는 유니폼에 팀 메인 스폰서를 넣기 시작했고, 유니폼 색상 선정을 두고도 팀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 엠블럼이 바뀌기 시작했고, 특이한 유니폼 패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불을 부은 것은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전사 프린트 기술입니다. 전사 프린트로 원하는 문양을 넣을 수 있게 되자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했죠. 1988 네덜란드와 서독 유니폼은 이런 흐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가장 주도한 브랜드는 아디다스였는데, 그 중심에는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한 아들이 있습니다. 전통과 기술을 중시한 아디다스 창업주 아돌프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가 그 주인공입니다.

호르스트는 언제나처럼 관습에 맞서서 싸웠고, ‘유로 1988’ 관련 상품을 준비하는 아디다스 디자인팀에 새로운 색상을 도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디다스 디자인팀은 서독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입었던 순수한 단색 유니폼에 무언가를 더할 기회를 잡았죠.

이 과정에서 패션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성 이나 프란츠만은 서독 유니폼을 만들기 위해 축구 유니폼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테니스 유니폼을 만들던 프란츠만은 수십 년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했던 독일 국기 색깔을 유니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 유니폼에 아디다스와 회장 호스트 다슬러 그리고 서독 대표팀 모두 만족했다고 합니다. 문제라면 이 멋진 유니폼을 입고 안방에서 네덜란드에 패해 결승전에도 가지 못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트로 유니폼 시대, 시작은 1988년
이제 과거에 입었던 유니폼을 재해석해 내놓는, 레트로 유니폼은 일반적입니다. 특히 홈 유니폼과 어웨이 유니폼이 아닌 세 번째 유니폼(써드 유니폼)에 레트로 유니폼을 넣는 팀이 많습니다. 월드컵이나 유로에서도 레트로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많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러시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이 레트로 유니폼을 입고 나왔습니다.

이런 레트로 유니폼에는 확실한 DNA가 새겨져 있습니다. 유로 1988에서 태어나, 유니폼 세계의 법칙을 아예 바꿔버린 두 유니폼의 DNA죠.

축구는 그라운드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축구계 역사를 바꿀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레트로 유니폼을 일상복으로 입는 일이 많습니다. 유로 1988이 가져온 변화는 이렇게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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