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마라도나가 마법사가 된 순간, TOP5

류청 2020. 11. 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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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Joe Brewin, 유지선 객원기자]       

디에고 마라도나가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라도나는 그동안 그라운드 위에서 다른 선수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물론이며, 나폴리에서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마라도나의 영광의 순간들을 살펴보자.

1, 1979 FIFA 청소년 월드컵
1977년 16세의 나이로 1부리그에 데뷔한 마라도나는 자국에서 열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하기엔 너무 어렸다. 실력은 충분했지만, 카를로스 메노티 감독은 어린 선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마라도나를 발탁하지 않았다.

마라도나가 세계무대에 첫 선을 보인 대회는 이듬해 일본에서 열린 ‘1979 청소년 월드컵’이다.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수월한 조 편성이긴 했지만, 조별리그에서 인도네시아를 5-0으로 완파했고, 폴란드를 상대로는 4-1 대승을 거뒀다. 유고슬라비아도 1-0으로 꺾었다. 마라도나는 조별리그에서 3골을 책임졌다. 토너먼트에서도 매 라운드 득점하며 원맨쇼를 펼쳤다.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알제리(8강 5-0 승), 우루과이(4강 2-0 승), 소련(결승 3-1 승)을 차례로 꺾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골든슈(득점왕)은 라몬 디아즈의 차지였지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마라도나의 차지가 됐다. 아르헨티나 A대표팀에 발탁되도 충분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순간이었다.

2. 1980년 아르헨티노주니어스 5-3 보카주니어스
아르헨티노주니어스는 마라도나가 1981년 보카주니어스로 향하기 전 5년간 머물렀던 첫 프로팀이다. 마라도나는 1976년 10월 아르헨티노주니어스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당시 나이가 15세였다. 마라도나는 보카주니어스로 이적하기 불과 4개월 전,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보카주니어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상대 수문장 우고 가티가 마라도나를 “작은 뚱보”라고 했는데, 이에 발끈한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며 5-3 승리를 이끌었다.

페널티킥으로 첫 골을 기록했고, 쉽지 않은 각도에서 빠르고 정확한 프리킥을 차 두 번째 골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중볼을 가슴 트래핑으로 멈춰 세운 마라도나는 아웃프런트 킥으로 보카주니어스의 골망을 갈랐고, 또 한 번 눈부신 프리킥을 차 네 번째 골까지 기록했다. 골키퍼가 수비벽 위치를 고려해 골대 왼쪽에 바짝 붙어 대기했지만, 마라도나는 보란 듯이 수비벽 쪽으로 차 상대의 허를 찔렀다. ‘작은 뚱보’도 나쁘지 않은데?

3. 1886년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2-1 잉글랜드
작은 천재 마라도나가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보여준 두 번째 골은 모두가 알고 있는 첫 번째 골(신의 손 논란이 있었던 득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피터 비어즐리는 마라도나를 놓쳤을 때 누군가 제발 그를 멈춰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도 골문까지는 거리가 꽤 됐기 때문에 동료들도 용서할 수 있었다. 피터 리드가 숨을 헐떡이며 따라가 봤지만 마라도나는 가뿐하게 리드를 제쳤다. 더 놀라운 건 체격이 좋은 테리 푸처를 조롱하듯 가볍게 제쳤다는 것이다. 이후 아름다운 볼 터치로 템포를 살짝 조절했고, 테리 펜윅을 끌고 들어간 뒤 슈팅했다. 부처가 서둘러 슬라이딩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 장면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힌다.


4. 1886년 월드컵 결승, 아르헨티나 3-2 서독
서독은 마라도나가 8강과 4강에서 잉글랜드, 벨기에를 괴롭히는 것을 지켜봤지만, 이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서독은 결승에 오르기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덴마크에 밀려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16강에서 모로코를 간신히 1-0으로 꺾었다. 멕시코와 8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으며, 4강전이 돼서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프랑스에 2-0 승리를 거뒀다.

당시 서독을 이끌던 프란츠 베켄바우어 감독은 결승전에서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마크맨을 배로 늘렸지만, 오히려 그 외 선수들에게 공간을 내줬다. 아르헨티나는 호세 루이스 브라운과 호르헤 발다노의 골로 아르헨티나가 후반 10분경 2-0으로 앞섰다. 서독이 경기 종료를 10분 남겨놓고 루디 푈러의 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후반 38분 호르헤 부루차가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마라도나도 중요한 결승골을 도왔다. 마라도나는 하프라인 근처에서 상대 선수 두 명의 밀착마크에도 불구하고 부루차가에게 롱패스를 찔러줘 도움을 기록했고, 이 골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우승트로피를 차지했다.

5. 1990년 나폴리의 두 번째 세리에A 우승
2년 연속 리그 우승트로피를 되찾지 못했던 나폴리는 밀란 형제에 복수를 다짐했다. 1987-88시즌 AC밀란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1988-89시즌에는 인테르밀란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나폴리는 아픈 기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1989-90시즌 나폴리는 12월 30일 라치오에 3-0으로 패하기 전까지, 개막전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16경기에 12골만을 허용했었다. 마라도나의 활약도 엄청났다. 이 기간에 마라도나는 절반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고, 7도움까지 기록했다. 마라도나의 활약은 후반기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15경기에 10골을 기록한 마라도나는 중요했던 유벤투스전을 3-1 승리로 이끄는 등 나폴리의 리그 우승에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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