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교육자는 거울 비춰주는 사람

기자 2020. 11. 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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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부족하지만 ‘거울론’이 교육관

학생 스스로 자신을 알게 하는 것

불행한 음악인들의 공통 특징

평생 자신의 단점을 모르는 것

이순 앞두고 세운 마지막 목표

진심의 소리 만드는 제자 양성

음악계에서 교육자로 일하다 보면 같은 분야의 사람이든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든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교수님의 교육관은 무엇입니까”이다. 나는 교육이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비춰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교육관은 ‘거울론’으로 표현할 수 있다.

교육자는 학생 스스로 어떤 면이 훌륭하고 어떤 면이 부족한지 느낄 수 있도록 학생에게 거울을 비춰 줘야 한다. 너무 단순할 수 있는 교육관이지만, 이는 생각 밖으로 어렵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큰 사람이란, 선천적으로 자신이 갖지 못한 부분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으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인 셈이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거울을 비춰 주는 역할은 사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선생은 거울을 비춘 뒤의 일도 책임져야 한다. 거울을 비춰 주면서 학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선생은 학생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하고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학생의 장점을 살려 주고, 부족한 부분이나 채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이해시키면서 알려주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이 단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에 대한 학생의 열정과 의지다. 음악을 열심히 하려는 동기(motivation)가 높은 경우에는 성장하고 도약하는 폭이 매우 크다. 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 하는 나약한 학생은 오랫동안 좌절하거나 방황하기도 한다. 학생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 못지않게 거울을 비춰 주고 지켜보는 선생도 괴롭고 힘들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기에 선생은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학생들에게 거울을 보여줘야 하는 적당한 타이밍은 있다. 꾸짖음보다 격려가 필요한 때도 있고, 기다려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에 민감한 학생을 가르칠 때는 더욱 섬세한 관찰과 주의가 필요하다. 학생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하고, 위축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조율해야 한다. 그러므로 선생이 가르치는 학생에 대해 제대로 잘 알고 있어야 제때 거울을 보여주고 꼭 필요한 순간에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도 많이 생긴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희열은 선생으로서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보람된 일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교육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소통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배우는 사람의 성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선생에 대한 믿음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함께할 때 학생들은 상상 이상으로 크게 자라고 변화한다.

그러면 거울론에 비춰볼 때 가장 불행한 음악인은 어떤 사람일까? 평생 자신의 단점을 모르는 음악인이 아닐까.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음악인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기성 음악인이 돼서야 자신의 단점을 알게 되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채워 나가는 시기다. 그러므로 힘들고 괴로워도 자신의 단점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중에 성인이 돼 더 쓰라린 경험을 하는 것보다는 학창 시절에 겪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알게 돼 고쳐 나가는 것이 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 쪽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1994년 귀국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래 참 많은 경험을 했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소중하고 뿌듯했던 순간도 많았고, 아프고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이제는 지나쳐 버리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 대해, 단 한 번 단 한 순간에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연주 무대에 대해, 피아노와의 진심 어린 소통에 대해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가르치는 것, 그것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가르칠수록 어렵고 가르칠수록 두렵고 자신이 없어진다. 사반세기 넘게 가르쳤으면 이제는 감을 잡을 때가 된 것도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젊었을 때는 어떤 학생이든 무조건 ‘내 방식’을 주입하기도 했고, 국제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던 때도 있었다. 실제로 그 덕에 과분하게 인정받고 부담스러울 만큼의 명예도 얻었다.

천지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순(耳順)을 목전에 둔 선생으로서 마지막 목표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과 개성을 지닌 학생들을,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소리’를 만들 줄 아는 학생들을 키워내기 위해 남은 시간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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