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꾸준함의 화신' 마크 벌리[슬로우볼]

안형준 2020. 11.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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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기록들이 있고 선수를 평가하는 요소 역시 기록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수많은 기록들이 그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를 말해주고 직전 시즌 기록은 선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된다. 한 시즌의 기록, 혹은 통산기록의 합계로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매 시즌의 기록을 나열해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선수를 평가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성적이 매 시즌 '널뛰기'를 한다면 해당 선수를 기용하는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이 선수의 올시즌이 '좋은 시즌'일지 '나쁜 시즌'일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즌이라면 팀에 최고의 결과를 안겨주겠지만 나쁜 시즌이라면 그 선수로 인해 팀의 시즌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

'계산이 서는 선수'라는 말이 있다. 해당 선수가 어떤 결과를 낼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다. 기복없이 꾸준히 좋은 기록을 쌓는 선수에게 감독들은 '계산이 서는 선수'라는 평가를 내린다. 마크 벌리는 바로 그런 '계산이 서는 선수'였다.

미주리주 제퍼슨 대학교 출신 1979년생 좌완 벌리는 1998년 신인드래프트 38라운드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지명됐다. 겨우 시속 80마일대 중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벌리에게 크게 주목한 구단은 없었다. 드래프트는 '타고난 재능'을 발굴하는 자리. 투수에게 있어 타고나는 것은 구속이다. 구속을 갖지 못한 벌리는 외면을 받았다. 화이트삭스는 전체 1,139순위로 벌리의 이름을 불렀다.

이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 됐다. 벌리는 단 2시즌만에 마이너리그를 졸업했고 2000년 빅리그에 올랐다. 1999년 싱글A에서 20경기 98.2이닝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한 벌리는 2000년 더블A에서 16경기 118.2이닝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했다. 트리플A를 건너뛰고 2000년 7월 빅리그에 콜업된 벌리는 데뷔시즌 28경기 중 25경기를 불펜으로 등판했고 51.1이닝을 투구하며 4승 1패, 3홀드, 평균자책점 4.21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는 마이너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벌리는 2001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빅리그에서 개막을 맞이했고 32경기 221.1이닝을 투구하며 16승 8패,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공은 느렸고 탈삼진 능력도 부족했지만 실점을 최대한 억제해냈다. 그리고 2015년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15년 동안 그 모습을 유지했다.

화이트삭스에서 2011년까지 활약한 벌리는 2012년을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보냈고 2013-2015시즌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뛴 뒤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518경기 3,283.1이닝 214승 160패, 평균자책점 3.81. 20승 투수도 아니었고 시즌 150탈삼진을 기록한 적도 단 한 번(2004, 165K) 뿐이었다. 사이영상 투표에서 TOP 3에 오른 적도 없었다. 벌리는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리그 최다 피안타 투수가 된 것은 4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벌리에게는 '꾸준함'이 있었다. 최고의 공을 던지며 최고의 성적을 쓰는 투수는 아니었지만 벌리는 단 한 번도 팀을 이탈하지 않았다. 커리어 내내 단 한 차례도 부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고 선발투수가 된 후 한 번도 시즌 30경기 선발등판을 채우지 못한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선발 진입 후 단 한 번도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적이 없었다.

단순히 조금 튼튼한 몸으로 로테이션을 지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벌리는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한 2001년부터 은퇴 시즌이던 2015년까지 15년 연속 10승을 달성했고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14년 연속 200이닝 투구는 전설의 투수인 그렉 매덕스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기록. 벌리는 현역 마지막 시즌 단 아웃카운트 4개가 부족해 매덕스를 넘어서지는 못했다(2015시즌 198.2이닝, 해당 부문 기록은 워렌 스판의 17년 연속 200이닝).

벌리가 현역으로 활약한 16년(2000-2015)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3,0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단 한 명, 벌리 뿐이었다. 내구성의 화신으로 손꼽히는 '금강벌괴' 저스틴 벌랜더(HOU)가 8년 연속 200이닝을 투구하는데 그쳤고 벌리와 마찬가지로 커리어 16시즌을 보냈음에도 아직 3,000이닝을 달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벌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벌리는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평균자책점이 5점대까지 오른 적도 없었다. 선발투수로 뛴 15년 중 11시즌에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시즌이 4번이었다.

'선발투수 마크 벌리'는 그야말로 '상수'와 같은 존재였다. 평균자책점이 다소 오르내릴 수는 있겠지만 200이닝 이상, 10승 이상이 무조건 보장되는 투수였다. 벌리를 보유한 구단 수뇌부, 코칭스태프는 130경기, 7-800이닝의 선발 기용만 고민하면 됐다. 계산이 서는 투수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실현해놓은 선수가 바로 벌리였다.

벌리가 빅리그에서 18년을 뛴 페드로 마르티네즈보다 2년을 덜 뛰고도 단 5승만을 덜 거둔 것은 벌리가 마르티네즈보다 뛰어난 투수여서도, 벌리가 마르티네즈보다 강한 팀에서 뛰었기 때문도 아니다. 화이트삭스는 벌리가 몸담고 있던 12년 동안 단 3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랐을 뿐이다. 벌리가 마르티네즈보다 화려하지는 못했어도 더 꾸준했기 때문이다(물론 벌리도 충분히 화려했다. 2009년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5차례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골드글러브도 4개나 받았다).

그야말로 '꾸준함의 화신'이었던 벌리는 2017년 화이트삭스 영구결번으로 지정됐고 올겨울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 피투표권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올해 명예의 전당 후보자 중에는 표를 받을만한 이가 없다고도 한다. 벌써부터 백지를 제출한다는 사람도 있다.

벌리는 커리어 내내 한 번도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 빛이 어두웠던 적도, 흔들린 적도 없다. 누구나 한 번은 빛날 수 있지만 16년 동안 꾸준히 빛나기는 어렵다. 과연 벌리는 쿠퍼스타운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묵묵한 야구의 '장인'이었던 벌리는 명예로울 자격이 있다.(자료사진=마크 벌리)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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