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북, 경제성과 경로 막히면 중국과 일방협력 쏠릴 것"

이제훈 2020. 11.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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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인영 통일장관
"한미와 협력 환경 만드는게 최선"
"바이든, 북과 인도주의 협력엔 전향적..잘 얘기해나갈 것"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통일부장관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이 경제 성과를 낼 다른 대안적 경로가 다 막히면 중국하고 일방적으로 협력하는 현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인영 장관은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한겨레>와 1시간10분 남짓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이 경제 문제를 한·미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우리한테 최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장관은 “북이 내년 1월 8차 (노동)당대회를 계기로 군사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유연해질 수 있으며, 경제 (집중) 노선은 확실히 강화하고 나올 것”이라며 “다만 제재 환경이 바뀌지 않고 경제적 성과를 만들 환경이 안 된다 판단하면 (어쩔 수 없이) 중국과 협력 강화로 갈 것”이라고 짚었다.

내년 상반기 한반도 정세의 가늠자로 일컬어지는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 문제와 관련해, 이 장관은 “내년 3월에도 코로나19 (확산) 상황은 있을 거고, (7월로 예정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군사 행동을 보류하자는 ‘올림픽 휴전’이 유엔의 정신”이라며 “한-미 정부가 (훈련 문제에)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 정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 집권 때인)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 이미 담겨 있다”며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핵심 내용인) 북·미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궁극적으로 비핵화 실현, 유해 발굴 정도의 정신은 바이든 당선자의 철학 속에 이미 디엔에이(DNA·유전자)로 내재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 문제는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가 한 것만 빼고)와는 다를 것“이라며 “북이 이 문제를 너무 경직되게 판단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북이 바이든 정부의 초기 6개월을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게 이후 긴 시간에 평화를 만들고 북이 바라는 제재 완화와 경제 발전의 길을 여는 데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식량·비료 대북 지원 등 ‘규모 있는 인도·민생 협력’의 의지도 거듭 강조했다. 이 장관은 “북의 올해 작황이 20만~30만t 줄었다 추정하면 내년 식량 사정은 덜 좋아질 게 틀림없다”며 “식량과 비료를 적지 않은 규모로 적정한 때 협력(지원)할 용의가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방적으로 ‘몇만톤하겠다’ 할 일은 아니고, 조금 주며 북쪽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감정적으로 멀어지게는 안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가벼운 질문부터. 국회의원과 장관의 일을 비교하면 뭐가 가장 다르고 어려운가

“장관은 아무래도 말의 책임성이 국회의원보다 훨씬 강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정치인일 때는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도 좋은데 (장관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직은 적응이 덜 됐다. 또 (국회의원만 할 때보다)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장관이 된 뒤 남북 관계에 대한 태도나 인식에 변화가 있었나?

“국회의원일 때는 ‘남북 관계가 왜 이렇게 더딜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평양의 응답이 없으니 (남북 관계 진전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더라. 솔직히 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작은 교역’을 강조해왔는데, 성과가 있나.

“(북한이) 내년 (1월) 신년사든 8차 (노동)당 대회까지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강한 봉쇄 기조대로 갈 것으로 보여 작은 교역의 여지가 적은 게 사실이다. 또 제재 물품이 아니라고 생각해 접근했는데, (북쪽 기관이) 제재 대상에 해당해 (교역을 추진)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다. 작은 교역을 구상한 건 (대북) 제재 하에서도 (남과 북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하자’는 차원이었다. 남과 북의 교역이나 경협이 자유로워져도 ‘비상 영역’으로 작은 교역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불을 피울 때 큰 장작만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큰불과 밑불이 다 있어야 불이 좋다. 작은 교역을 구조화하는 구상도 하는데, 남북 대화가 복원되면 (북쪽에)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 정신을 이어받았으나 교류·협력 분야에선 금강산관광·개성공단에 비견할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다. 핵심 원인으로 대북 제재가 꼽히는데 대응 방안은?

“북은 평화체제 문제 등이 우선일 수 있겠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경협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제재 상황에선 인도협력, 민생협력을 먼저 할 수밖에 없다면 규모라도 키우자는 생각이다. 인도협력 패키지, 민생협력 패키지를 규모 있게 해봤으면 좋겠다. 공공 인프라 영역도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으니 철도·도로협력을 해보자는 생각이다.

내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협력이나 ‘평화’에서 성과를 내려면 제재 국면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제재를 유연하게 해 비핵화 촉진 기제로 써야 한다고 끊임없이 얘기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선 잘 안 됐다. 바이든 당선자 인터뷰를 보면, (대북) 제재 강화와 완화의 적절한 배합이 북쪽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주민들이 미래 비전을 인식하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인권문제에 원칙적이고 단호하리라 생각되는데, 인도주의 협력 문제는 그것대로 굉장히 전향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잘 얘기해나가면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는 유엔군사령관의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을 포함한 관할권 문제도 남북 협력의 중요 장애물로 거론된다.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비군사 영역의 교류·협력은 유엔사가 우리 정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 유엔사는 기본적으로 군사 분야와 관련한 규정이었지 비군사적인 영역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통제하고 때로는 허가하듯이 작동하는 영역은 아니었다. 우리가 작전통제권을 회수해나가는 현실에서 한·미연합사의 지위가 바뀌는 부분을 고려하면 유엔사도 그에 걸맞게 달라지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대외정책의 양대 축인 국무장관(토니 블링큰)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제이크 셜리번)을 지명했다. 이들과 한-미 관계, 대북정책 등을 조율해야 하는데.

“국무장관과 외교안보보좌관이 한반도 특히 대북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개인 특성도 있겠지만 바이든 당선자의 기본 구상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일 것으로 생각한다. ‘핵 능력을 감소시킨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 ‘(대북) 제재 강화와 완화를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는 게 바이든 당선자의 기본 입장이라 이해한다. 그건 우리 정부의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명된 두 분한테 축하 인사를 전한다. 가능성을 열어놓는 실용적 접근으로 트럼프 정부에서 막힌 부분을 더 나은 단계로 함께 진입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0월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 극복 뒤에나 남북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코로나19 극복과 남북 협력을 조기에 현실화할 방법이나 구상이 필요하지 않나.

“북은 ‘경제보다 방역이 우선’이라는 태도로 경제와 민생을 희생하면서까지 방역을 위한 철저한 봉쇄를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북한이 북한식의 방역 체계로 성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협력을 통해 좀더 유연하게 대처할 길이 있다면 북은 절대로 경제와 민생을 희생하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치료제나 백신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치료제나 백신으로 협력할 의향이 있다.

북이 응한다면 좀더 큰 틀의 보건의료 협력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건위기라는 게 코로나를 이겨냈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쪽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접경지역으로) 안 왔으면 우리 쪽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없었을 것이다. 말라리아, 결핵, 간염, 조류독감 같은 게 (남북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은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묶여있다. 공동의 방역체계를 만들어 대응하는 것은 북쪽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필요한 일이다. 내년 봄쯤이면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를 통한 협력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북쪽의 판단이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도 없는데 북을 돕는다’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그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대외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8차 당대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거라 예상하시나. 또 좀 더 긍정적인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의 군사노선을 가져가면서도 부분적으로 유연화할 수 있고 경제 부분에서는 확실한 성과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성과를 만들 환경이 안 된다거나 제재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남·북·미 관계가 개선되며 협력이 강화되는 쪽으로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 관심은 거기에 가 있다. 한-미 간 정책적 공조가 북의 부분적인 유연성에 근거해 남·북·미 관계를 타개하는 쪽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내년 상반기쯤 정세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2032년 여름철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협력’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공동올림픽 구상을 북쪽이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의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부터 유치 경쟁이 시작될텐데 남북이 실기하지 않고 함께하면 좋겠다. 만에 하나 대화 복원이 늦어지면 우리라도 먼저 움직여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선 우선 우리가 유치하고 2032년엔 평양과 공동 개최하겠다 선언하는 방안도 생각해둬야 한다. 올림픽 공동 개최가 성사되면 평화·비핵화·교류협력 등에 굉장한 선순환의 고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제재(완화)와 경협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볼 것이고, 북도 국제사회로 나오며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규범을 더 신경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해 어업지도원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서해 (어업지도원) 피격 문제라든가 연평도 포격,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국민의 평화 열망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라 재발해서는 안 된다. 북의 책임있는 조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원칙은 분명하다. 다만 이런 것들을 계속 갈등과 대립의 역사로만 놔둘 거냐 고민해야 한다. 더 크게 풀어내 미래로 평화로 향하고 북의 책임있는 조처를 만들어내려면 대화의 길로 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이 오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이제훈 김지은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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