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장진호 70년

임민혁 논설위원 2020. 11. 27. 03: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하던 미 해병들이 눈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1950년 11월 26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북진하던 미 해병 제1사단 1만2000명이 개마고원 장진호(長津湖)에서 중공군의 매복 작전에 걸렸다. 포위망은 계곡을 따라 23㎞나 됐다. 중공군 12만명이 나팔·뿔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며 끝없이 몰려왔다. 17일간 혈투 끝에 미군은 포위망을 뚫었지만 그 대가는 컸다. 사망 2500명, 부상 5000명. 중공군은 10배가 넘는 피해를 당했지만 장진호 전투는 미군 역사상 몹시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총포탄보다 더 무서운 게 살인적 추위였다. 밤이면 체감기온이 영하 40도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교전에 따른 사망자보다 동사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지옥보다 더한 추위(colder than hell)’ 등에 따르면 무기가 얼어서 소변으로 녹이려고 했지만 소변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수혈 팩이나 모르핀도 얼음이 됐고, 동상(凍傷)에 걸린 병사 다리는 톱으로 잘라내야 했다. 적 사격을 피하려 눈밭에 엎드렸다가 그대로 동사한 병사도 있었다.

/일러스트

▶피해 규모만 따져 일각에선 장진호 전투를 미군의 패전이라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그 열악한 조건에서 중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포위망을 뚫었다. 미 해병이 아니면 누구도 해내지 못할 기적 같은 전투다. 미 해병은 민간인도 10만명 구출했다. 장진호 전투로 중공군 남하가 2주간 지연되는 사이 미군은 역사상 최대 규모 민간인 구조 작전인 흥남철수를 성공시켰다. 당시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우고 거제도까지 항해한 메러디스빅토리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첫 방미 때 이런 인연을 적극 활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장진호 용사들을 찾아 “여러분이 없었다면 내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 새 정권의 ‘반미 친중’ 성향을 의심하던 미 조야의 기류도 이 연설로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몇 달 뒤 중국에 가서는 “중국과 한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한 동지”라며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중국 지도부는 6·25를 ‘미국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장진호 미 해병 용사들이 문 대통령 말을 들었다면 심경이 어땠을까.

▶미 국무부가 어제 장진호 전투 70년을 기리는 트윗을 5건 연속으로 올렸다. 정작 청와대와 국방부에서는 아무런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미 해병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픈 한국민은 많을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