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미디어가 된 뉴스메이커, 그들이 만든 세상

박상현 디렉터 2020. 1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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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의존했던 정치인‧연예인‧기업인 등 뉴스메이커
소셜미디어란 '직통 전화'로 대중과 소통 기회 발견
하지만 가짜 뉴스 지친 사람들 전통 미디어 다시 찾아
소셜미디어가 사회 분열 조장한다는 의식도 확산
인터넷과 미디어 지형 또 한번 변화할 조짐 보여
전통 미디어 존재 가치 증명하고 반격 성공할지 주목

지금은 잡지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타임(TIME)지가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만큼은 큰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그렇게 선정된 인물은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1938), 이오시프 스탈린(1939)이 선정되었을 때 독자들이 반발했고, 1982년에는 아예 ‘올해의 머신’이라며 컴퓨터를 선정해서 타임지가 지나치게 흥행을 추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하다는 반응을 받은 건 2006년의 ‘당신(You)’이었다.

정보화 시대 주역으로 떠오른 평범한 개인

타임지의 선정 이유는 이랬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유튜브와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무명의 일반인들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인터넷을 장악하면서 평범한 개인이 정보화 시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타임지의 결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인터넷 산업의 미래를 내다본 탁월한 선정이었다. 그 시점 이후로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쪽으로 인터넷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하경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이 2012년에 주식을 상장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다. 흔히 에스원(S-1)이라 불리는 이 보고서는 웹(web)이 사용자 개인과 그의 관심사가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페이스북이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언뜻 들으면 다소 추상적인 선언처럼 들리지만, 페이스북은 구체적인 방법을 갖고 있었다. 개별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성향과 취향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 보여줌으로써 페이스북 사용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사용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의 광고 수입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흔히 ‘페이스북 알고리듬’이라 불리는 에지랭크(EdgeRank)를 페이스북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이다. 에지랭크의 목표는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량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었고, 그렇게 본다면 온라인 게임과 같은 다른 서비스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글은 물론, 각종 매체들의 뉴스와 콘텐츠를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는 과정에서 모든 온라인 콘텐츠가 오로지 사용자, 즉 ‘당신’의 취향과 관심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기회 발견한 뉴스메이커들

페이스북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온라인의 콘텐츠를 끌어들여 오로지 개별 사용자가 좋아할 것들로만 재배열한다. 알고리듬으로 이루어지는 이 재배열 작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과거 수십 년 동안 여론을 형성하고 이끌어온 각 매체의 편집진이다. 매일 쏟아지는 소식들 사이에서 진위와 경중을 구별해내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온 이들의 작업은 소셜미디어에서 오로지 사용자 한 사람의 관심사로만 콘텐츠를 구성해주는 얼굴 없는 알고리듬으로 대체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타임지를 비롯해 미국의 뉴스 매거진들의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한 때는 페이스북이 알고리듬으로 무장한 뉴스피드를 도입한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단순한 판매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체의 영향력이었다. 신뢰도와 상관없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는 소셜미디어는 전통적인 언론 매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눈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뉴스메이커들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들은 과거에는 언론 매체가 취재를 해줘야만 대중에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후에는 굳이 미들맨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팬들과 꾸준히 직접 소통을 유지하면 언론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일이 생겨도 얼마든지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라는 직통 전화가 있기 때문이다.

반격 시작한 전통 미디어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사들이 모조리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선언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전혀 믿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우상과 직접 소통하기 때문에 ‘트럼프의 승리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언론사의 진위 평가 따위는 필요 없다고 믿는 것이다. 테슬라의 경우 CEO 일론 머스크의 무책임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도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문가들의 분석과 상관없이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개미군단의 힘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뉴스메이커가 휘두르는 소셜미디어의 위험을 깨닫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권 4년 동안 미국인들은 전통 미디어를 다시 찾기 시작해서 구독률이 오르고, 다시 흑자를 내는 매체들이 생겨났다. 소셜미디어와 가짜 뉴스에 지친 사람들이 쏟아지는 정보를 대신 선별하고 추천해줄 신뢰할 만한 조직, 그리고 알고리듬이 아닌 ‘사람’을 원하게 된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듬이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빅테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한국에서는 포털 서비스들이 뉴스 전달자로서의 역할에서 점점 손을 떼고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지형은 이제 다시 한번 변화할 조짐이 보인다. 물론 뉴스메이커들은 여전히 자신의 지지자와 팬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겠지만, 전통 미디어는 콘텐츠 생산자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들의 반격이 성공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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