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과 여성 중독자 늘어 걱정… 허기진 영혼까지 보살핍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0. 1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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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운영하는 알코올중독전문 ‘카프성모병원’ 하종은 원장
알코올중독 치료 전문병원인 카프성모병원 하종은(왼쪽) 원장과 원목실장 이준석 신부. 이 병원은 서울대교구가 운영하지만 관할 지역은 의정부교구여서 병원 로비엔 프란치스코 교황과 의정부교구장 이기헌(오른쪽) 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유경촌 주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김한수 기자

“알코올중독을 끊은 50대 환자가 그랬습니다. ‘중독에 빠져 있던 기간이 주님이 주신 축복 같다’고요. 중독 이전엔 삶을 돌아보거나 영적 방향성 없이 살았는데 중독을 극복하면서 성숙해졌다는 거죠. 천주교가 운영하는 병원인 만큼 환자들의 망가진 몸과 허기진 영혼을 함께 달래려 노력합니다.”

12월로 5주년을 맞는 경기 고양시 카프(KARF:Korean Addiction Research Foundation)성모병원 하종은(42) 원장의 말이다. 이 병원이 처음 개원한 것은 2004년. 당시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출연해 알코올중독전문병원으로 문을 열었지만 2013년 주류협회가 지원을 끊으면서 한동안 진통을 겪었다. 이후 2015년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을 맡으면서 재가동됐다. 하 원장은 이때부터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하 원장은 평소 중독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전공의 시절 한 환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살 시도를 반복하던 우울증 환자였는데, 면담과 치료가 잘 진행되는 줄 알았던 환자가 어느 날 과음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일이 큰 계기가 됐다.

카프성모병원 하종은(왼쪽) 원장과 원목실장 이준석 신부. 두 사람 뒤로 주교, 사제, 신자들의 기부 물품을 판매해 병원 재정에 보태는 매장이 보인다. /김한수 기자

현장에서 느낀 알코올중독의 문제점은 뭘까. 하 원장은 “문제를 다 키운 상태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알코올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직장에서 잘린 다음에야 병원을 찾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여성 중독이 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고 했다. “남성은 술을 마신 뒤 불안·우울을 느끼는 쪽이 많다면, 여성은 우울·불안해서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에 관대한 문화는 우리 사회의 ‘기저 질환’이다. “흔히 ‘술은 문제가 없다. 사람이 문제다’라는 왜곡된 시선이 많습니다. 또 술을 ‘곁들이는’ 것이 아니라 술이 목적이 된 음주 습관이 많고요. 요즘 늘어난 ‘혼술’은 더 위험합니다.” 하 원장은 “그나마 ‘윤창호법’ ‘조두순 사건’ 등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최근엔 알코올중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이 다행이지만 예방, 치료, 재활에 대한 관심이 아쉽다”고 했다.

천주교가 운영하는 병원인 만큼 일반 정신병원과 달리 전인적 치료를 지향한다고 하 원장은 말했다. 폐쇄병동이 많은 일반 정신병원과 달리 개방병동형 비중이 높고, 입원보다는 통원 치료 쪽으로 권유한다. 입원 환자의 경우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환자 치유 프로그램을 가족 동반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단절보다는 소통을 위한 것.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중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취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하 원장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고, 카프성모병원도 ‘의료급여 정신과 적정성 평가 1등급’에 선정됐다.

카프성모병원 로비엔 재활용 매장이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이 매장에선 주교들을 비롯해 사제와 신자들이 기부한 물품을 판매해 병원 운영에 보태고 있다. /김한수 기자

영적(靈的) 허기를 채워주는 것도 이 병원의 중요한 역할. 병원 1층 성당에선 매일 미사가 열리고, 예비자 교리 과정도 열고 있다. 사제 2명과 수녀 2명도 상주하며 상담하고 있다. 영적인 갈급함이 술로 이끄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원목실장 이준석(41) 사도요한 신부는 “천주교 교회 정신에 맞게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하 원장은 카프병원에 부임할 무렵 ‘섭리’를 느꼈다고 했다. 하 원장의 세례명은 ‘테오도시오’. 그는 거의 30년 동안 테오도시오 성인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5~6세기 지금의 이스라엘 지방에서 병자와 정신 질환자를 돌봤다는 것.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새삼 소명의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하 원장은 “치료를 잘 받고 단주한 후 ‘제2의 인생’ ‘제2의 신혼생활’을 회복했다는 환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 원장의 주량은 어떨까. “비밀입니다.(웃음) 항상 환자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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