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또 ‘쇼통’ 들러리된 기업인

최인준 산업2부 기자 2020. 1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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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지난 25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한국판 뉴딜-대한민국 인공지능(AI)을 만나다’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등 정부 인사와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구현모 KT 대표,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한성숙 네이버 대표,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 등 국내 주요 IT 기업의 수장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AI 국가전략 수립 발표 이후 1년간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당시 기업 대표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데다 긴 이동 거리 탓에 참석을 망설였다. 더 난감했던 건 행사에 기업별 발표자가 따로 있어 대표들이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청와대가 부르니 나갔다고 한다. 결국 이날 기업인들은 1시간 넘게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고 돌아왔다. 대통령이 입장하면 일어나 박수 치고, 장관이 발표하면 또 박수를 쳤다. 한 참석자는 “박수만 치다가 끝난 행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청와대 행사 때 열리던 대통령과 티타임도 없었다. 참석자들은 서로 2m 이상 떨어진 채 앉아 있어야 했고, 대통령·장관들과 간단한 대화조차 나누기 어려웠다. 참석 기업 사이에선 “정부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에 회사 대표까지 불러야 했나” “국민들에겐 모임을 자제하라면서 왜 행사를 강행한 건지 모르겠다” 등 불만 섞인 반응이 나왔다. 정부는 코로나에도 행사를 잘 치렀다고 자화자찬했다. 한 공무원은 본지 통화에서 “코로나 때문에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다”고 전했다.

현 정부 들어 기업인들에게 청와대·정부 행사에 ‘들러리 참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청와대는 지난 2월 ‘한국판 CES’로 열려던 ‘대한민국혁신산업대전’을 앞두고 삼성·현대차·SK·LG등 4대 그룹 총수 참석을 요청했다. 개막식에서 대통령 옆에 그룹 총수가 서는 장면을 연출하려 한 셈이다. 코로나로 연기되면서 이 시도는 불발에 그쳤지만 해당 기업들은 뒷맛이 씁쓸했다. 기업인과 대통령이 자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들러리라면 그건 다르다.

정부 요청에 협조하다고 뭔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 기업은 1조원 이상을 후원하고도 공식 리셉션에 초청받지 못했다. 그해 4월 평양 정상 회담에 주요 그룹 총수들이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찾았지만 북한으로부터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면박도 당했다. 오히려 북한을 다녀온 기록 때문에 미국 출장 시 무비자 입국이 어려워지는 후폭풍도 감당해야 했다.

“기업인이 ‘쇼통(보여주기식 소통)’ 들러리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정부가 기업인을 대하는 걸 보면 기업을 동반자로 보는지, 이용 대상으로 보는지 명확해진다”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의미 없는 행사에 불려가야 하는지 착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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