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쥐꼬리무
[경향신문]
쥐꼬리무는 머리 부분에서 엷은 녹색을 머금다가 허리에 와서 흰빛을 띠며 둥글고 불룩한 힘을 준 후에 가볍게 꼬리를 뽑아내는 토종 무다. 단단하면서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가졌다. 우리 고향에서 많이 났는데 ‘송정리 무’라면 전국에서 알아주었다. 그곳은 평야가 대부분이라서 무를 밭이 아니라 논에 많이 심었다. 그 많은 무를 어디에 쓰는지 어린 나는 궁금했다.
반찬은 물론 밥에까지 넣어 먹었다. 농갓집이다보니 안팎으로 일하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개와 돼지까지 한 식구로 쳐서 가마솥으로 그득하게 밥을 해야 했으니 겨울 내내 무가 대부분인 밥을 먹는 일은 아이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다른 먹거리조차 없는, 이를테면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이 아닌 무밖에 없으니 겨울에도 언 땅에서 무를 파다가 깎아 먹는 일이 주전부리의 전부였다.
그런 무를 어른들은 애지중지했다. “무밥은 그래도 먹을 만혀, 잡곡만 먹는 것보다는 난겨.” 증조할머니의 말씀이셨다. 그래도 나는 무밥 냄새도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서울을 다녀오시더니 지우개가 달린 무지개 연필 한 다스와 과일 향이 나는 ‘드롭프스’ 한 봉지를 사 오셨다.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소문난 절약가인 할아버지한테서 처음 받는 선물이기도 하려니와 지우개가 달린 연필은 우리 반에서 내가 처음 쓰는 일이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들판에 있는 무를 서울로 싣고 가서 좋은 수입을 얻었기에 모처럼 기분을 내서 사 오신 선물이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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