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것 아니다"

안준용 기자 2020. 11.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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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예방, 강경화와 회담.. 코로나 통제돼야 시진핑 방한 시사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을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이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방한(訪韓)을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반응이었다. 지나치게 미국 관점에서 보지 말라는 뜻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왕 부장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장관과 회담 후 ‘한국 정부·여권에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압박하는 데 동참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인가’란 취재진 물음에 “외교가 그리 간단하다고 생각하느냐”며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세계 190여 나라가 모두 독립된 자주국이며, 중·한은 가까운 이웃으로 친척처럼 자주 오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한은 방역·경제·지역 안정·한반도 문제 협력,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등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왕 부장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방한 여건과 관련해선 “지금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나. 중요한 건 (코로나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내 코로나 재확산을 의식한 듯한 발언으로, 시진핑 연내 방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박 3일 일정으로 전날 밤 입국한 왕 부장은 이날 강 장관과 회담·오찬 후 청와대에서 57분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시진핑 주석은 왕 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전한 구두 메시지에서 “코로나 방역 협력과 양국 교류 협력에서 세계를 선도했다”며 “국빈 방문 초청에 감사하고, 여건이 허락될 때 방한하고자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한국에서 만나 뵙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왕 부장에게 “특별히 그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건설적인 역할과 협력에 감사를 표한다”며 “중국 등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정상회의의 조속한 개최에 함께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왕 부장은 이날 강 장관과의 회담에 24분 지각해 ‘외교 결례’ 논란도 일었다. 왕 부장은 2017년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려 논란이 됐다. 작년 12월 방한 때는 장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간담회에 40분 지각하기도 했다.

왕 부장은 이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을 함께했고, 27일엔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 면담한다. 사실상 이틀 방문에 한국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해제 등 논의엔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왕이, 시진핑 언제 방한하나 질문받자 기자 마스크 가리키며 “코로나 잡혀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으로 방한(訪韓) 첫날 일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첫 일정부터 20분 넘게 지각하고도 공개 사과는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기대해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에 대해선 ‘한국 내 코로나 통제’를 전제로 내걸었다. 반면, 미·중 갈등 현안에 대해선 한국 정부에 ‘적절한 처리’를 요구했다. 외교가에선 왕 부장의 이런 행태에 대해 “외교적 결례이자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중 양국은 이날 오전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방역 신속 통로 개선 및 적용 범위 확대 ▲외교·안보(2+2) 대화 가동 등 10개 의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공들여온 시 주석 연내 방한이나 북한 비핵화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해제에도 진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왕 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스크를 가리키면서 “코로나가 통제돼야 한다. 조건이 성숙하면 (시 주석) 방문이 성사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확진자 수가 이날 500명 이상으로 치솟은 가운데, 시 주석 연내 방한에 사실상 선을 그은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방한 일정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미·중 갈등 현안에 대한 자국 입장을 설명하며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이 최소한 중립에 서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한 강 장관 답변은 중국 측 발표 자료에 담겨있지 않았다. 다만 강 장관은 중국이 자국 IT 기업에 대한 미국의 규제에 맞서 제시한 ‘디지털 안보 이니셔티브’에 대해선 “적극 연구하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왕 부장은 이날 회담장에 24분 늦게 도착했다. 약속된 회담 시작 시각(오전 10시)을 20분 앞두고 돌연 “개인 사정이 있다”며 통보했고, 지각 이유를 묻자 “트래픽(교통 체증)”이라고 했다. 강 장관 등은 회담장에서 20분 넘게 기다렸다. 왕 부장은 작년 방한 때도 각계 인사 100여 명을 초청한 오찬에 40분 가까이 늦어 참석자들의 반발을 샀다.

왕 부장은 회담에서 별도의 사과 없이 모두(冒頭)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중·한 관계를 중시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뒤이어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열린 오찬에서 중국 측은 지각에 대해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에는 갈비찜 등 한식과 함께 왕 부장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알려진 짜장면도 나왔다.

왕 부장은 오후 4시에는 청와대를 찾아 57분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등이 배석했다. 기념 촬영에선 문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자 왕 부장이 잠시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시 주석은 왕 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전한 메시지에서 “국빈 방문 초청에 감사하고, 여건이 허락될 때 방한하고자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한국에서 만나 뵙길 기대한다”고 했다.

중국 내 서열 20위권의 왕 부장 방한에 당·정·청 실세가 총출동했는데 그가 지각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야권에선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명나라·청나라 칙사 떠받들듯이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

왕 부장은 저녁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만찬을 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 9시까지 진행된 만찬에는 김한정·김성환 등 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배석했다. 왕 부장은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의 동시적 조치를 언급하며 “남과 북이 주인”이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남북) 소강 국면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중 갈등과 관련해서는 “중국 정책은 불충돌, 불대결”이라고 했다고 한다. 왕 부장은 중국 마오타이주를 돌렸고, 이 전 대표도 여러 잔을 마셨다고 한다. 왕 부장은 27일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과 조찬을 하고 박병석 국회의장을 면담한 뒤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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