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소설 읽기의 의미

남상훈 2020. 11. 2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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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순전히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 독서실을 장시간 이용한 적이 있다.

더운 여름철 내내 좁은 독서실에 앉아 도스토옙스키의 긴 장편소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읽었다.

러시아 소설이라 사람 이름이 너무 어려워 책의 겉장에 등장인물들을 잔뜩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몇 십 년 전의 일이라 그 소설의 등장인물은 물론 스토리조차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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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순전히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 독서실을 장시간 이용한 적이 있다. 더운 여름철 내내 좁은 독서실에 앉아 도스토옙스키의 긴 장편소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읽었다. 러시아 소설이라 사람 이름이 너무 어려워 책의 겉장에 등장인물들을 잔뜩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몇 십 년 전의 일이라 그 소설의 등장인물은 물론 스토리조차 잊어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것들이 지금 나에게 과연 도움이나 된 것일까.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들이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뇌의 움직임에 관한 연구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장면에 맞춰 우리 뇌의 다양한 감각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가 에마 보바리의 옷감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 뇌에서는 촉각 담당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었고, 에마가 마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뇌의 운동 뉴런이 활성화되었다. 당연히 소설을 겉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 집중해서, 소설에 빠져서 읽을 때 이런 뇌의 변화가 일어났다. 연구팀은 재미로 읽느냐, 집중해서 읽느냐에 따라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소설을 읽는 것은 남의 삶을 그저 엿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가 소설의 장면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 수사학자 월터 옹도 소설을 읽는 독자는 기꺼이 그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그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소설에 빠질 때 내가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 되는 마음의 공감 이론이 형성된다. 공감은 지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는 것과 함께 느끼는 감각도 필요하다. 소설은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통해 우리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에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내 삶의 지식과 가치가 되어 나의 생각과 행동의 밑바탕(세계관)이 된다.

공자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대나무 책자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위편삼절). 두보도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자판을 치거나 휴대폰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가죽 끈이 아니라 마우스나 키보드를 매번 교체하기에 바쁘다. 책을 반복해서 읽어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진 공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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