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내 방에서 출발하는 심상 여행

남상훈 2020. 11. 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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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새콤한 귤즙이 입 속에 퍼지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 우리 몸은 실제로 귤을 먹은 것처럼 반응한다.

발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무대에 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라고 적힌 문장을 읽어 보라고 했을 때와 이 장면을 실제처럼 머릿속에 그려보라고 했을 때, 어느 경우에 심장이 더 빨리 뛸까?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을 글로 읽는 것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상상할 때 우리 몸은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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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이미지 상상만으로 우리 몸 반응
눈을 감고 가고 싶은 여행지로 떠나보자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노랗고 동글한 귤 한 개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얇은 껍질을 벗기고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고 터뜨린다고 상상해보자. 귤 알맹이가 톡 하고 터지면서 달고 신 맛이 혀를 자극한다. 이 장면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면 지금 입 안에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였을 것이다. 새콤한 귤즙이 입 속에 퍼지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 우리 몸은 실제로 귤을 먹은 것처럼 반응한다. 감정과 강하게 밀착된 이미지가 떠오르면 더 강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다.

삼십 년의 결혼생활 동안 시어머니에게 시달렸던 여성이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했다. 발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무대에 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라고 적힌 문장을 읽어 보라고 했을 때와 이 장면을 실제처럼 머릿속에 그려보라고 했을 때, 어느 경우에 심장이 더 빨리 뛸까?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을 글로 읽는 것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상상할 때 우리 몸은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심상(心像, mental imagery)은 실재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진짜처럼 지각되는 이미지를 말한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과 운동 감각 모두를 마음속에서 그려낼 때 심상은 강하게 활성화된다. 몸이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면 근육을 실제로 쓸 때와 동일한 전기 자극이 뇌에서 일어난다. 상상하는 그 장면이 감각적으로 풍성하면 뇌 반응도 커지고 뉴런 간의 연결도 강화된다. 실제 체험과 동일한 뇌 반응이 그 체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유발되는 현상을 기능적 등가성(functional equivalence)이라고 한다.

운동선수들이 흔히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이미지가 아니라 심상을 활용하는 훈련법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눈을 감고 흰색 건반을 누르는 행동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도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심상 훈련으로 성과가 향상될 수 있다는 건 잘 확인된 사실이다. 우울증 환자가 자기 모습에 대해 긍정적인 심상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울감이 감소된다. 심상이 바뀌면 기분도 변하는 것이다.

요즘 상담하다 보면 “비행기 타고 어디론가 떠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상이 지루해지면 여행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곤 했는데 지금은 꼼짝할 수 없으니 “숨이 막혀요!”라며 답답해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심상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유해 주고 싶다.

가고 싶은 휴가지의 풍경 사진 30장 정도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두고 스치듯 넘겨가며 서너 번 반복해서 본다. 그러고 난 뒤에 눈을 감고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듯이 그 이미지들을 떠올려 본다. 황금빛 태양이 몸을 감싸는 촉감을 느끼고,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풀숲의 내음을 맡고 있는 자기 모습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상상해본다. 생생한 감각들을 일깨워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눈을 감고도 여행의 감각들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된다. 상념은 사라지고 여행을 떠난 것처럼 몰입하게 된 것이다. 작은 방에서 지겨운 서류만 들춰 보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눈을 감아 보자. 평화롭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상상 여행을 떠나보자. 심상에 맞춰 자기감정도 평화롭고, 아름답고, 부드럽게 변해갈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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