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과 황금 발을 가진 남자'.. 원수들도 그의 재능은 인정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디에고 마라도나 벽화 앞에서 한 부녀 축구팬이 그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세계축구계에 있어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 찾아왔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팬들 곁을 떠났다.

'BBC', 'CNN' 등 외신은 25일(이하 현지시간)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향년 60세.

마라도나는 이달 초 경막하혈종 진단을 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 일주일 만에 퇴원한 마라도나는 이후 자택에서 회복에 전념하던 중 급작스레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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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함께 축구하자"… 전세계가 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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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6년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한 뒤 디에고 마라도나가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마라도나는 세계축구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최고의 선수였다. 자국 명문 보카 주니오르스를 비롯해 FC 바르셀로나(스페인), SSC 나폴리(이탈리아) 등 각국 명문 구단을 거쳤다.

특히 나폴리에서는 공식전 257경기에 출전해 115골 29도움을 올리며 팀 공격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마라도나를 앞세운 나폴리는 2번의 세리에A 우승과 1번의 UEFA컵 우승(유로파리그 전신)을 달성하며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를 누렸다. 지금도 나폴리에서 마라도나가 '신'으로 불리는 이유다.

마라도나의 빛나는 커리어는 클럽과 국가대표를 가리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통산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잡아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 진출의 중심에는 마라도나가 있었다. 1990년 이후 아르헨티나는 FIFA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 꼬박 24년(2014 브라질 월드컵)을 기다려야 했다.

마라도나의 비보가 전해진 뒤 전세계 축구계는 애도의 물결에 휩싸였다.

아르헨티나축구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설이 세상을 떠났다는 데 깊은 슬픔을 전한다"며 "마라도나 당신은 항상 우리 가슴 속에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3일 동안 국가적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마라도나의 시신을 대통령궁에 안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즈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당신이 한 모든 일에 감사하다. 당신은 우리를 세계 정상에 올려놨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고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마라도나와 더불어 세계축구계 최고의 전설로 손꼽히는 펠레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난 최고의 친구를 잃었고 세계는 전설적인 선수를 떠나보냈다"며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축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해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마라도나의 후계자' 리오넬 메시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에 있어 정말 슬픈 날이다. 디에고는 영원할 것"이라고 그를 추모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오늘 세상은 역사상 최고의 천재를 떠나보냈다.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추모에 이은 이색적인 주장도 나왔다. FC 포르투 시절 마라도나와 연을 맺었던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올림피크 마르세유 감독은 FIFA를 향해 "등번호 10번을 모든 대회, 모든 팀에서 영구결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마라도나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경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라도나는 현역 시절 등번호 10번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 10번은 최고의 선수를 상징하는 등번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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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 썼지만 위대한 선수"… 잉글랜드마저 인정한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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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폴리의 스타디오 산 파올로 앞에 마련된 디에고 마라도나의 추모 장소에서 한 축구팬이 슬픔에 잠겨있다. /사진=로이터

전세계적인 애도 물결에 유독 동떨어진 곳도 있다. 바로 잉글랜드다. 잉글랜드는 1986년 월드컵 당시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나 1-2로 패하며 탈락했다. 당시 2골 모두 마라도나가 기록했는데 이 때 손으로 골을 넣는 이른바 '신의 손' 사건이 터지면서 마라도나를 향한 증오심이 증폭됐다.

영국 내 여러 매체들은 유독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 날을 세웠다.

영국 '더 선'은 마라도나의 코카인 중독과 금지약물 양성반응 등을 나열하며 "마라도나의 문제 많은 영혼이 마침내 안식을 찾게 됐다"고 보도했다.

더 선은 보도에서 "아르헨티나축구협회가 마라도나를 대표팀 감독으로 앉혔던 건 폴 개스코인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 개스코인 역시 전성기 시절 잉글랜드 최고의 천재로 불렸으나 과도한 음주와 마약으로 몰락했던 인물이다.

영국 유력매체 '가디언' 역시 "마라도나는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처럼 항상 약체였고 아웃사이더였다"며 과거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졌던 포클랜드 전쟁까지 언급했다.

1986년 월드컵의 '피해자'도 나섰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 당시 잉글랜드 골키퍼였던 피터 실튼은 이날 영국 '데일리 메일'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끝내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것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그건 명백한 반칙이자 속임수였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들도 마라도나의 재능과 그가 남긴 유산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실튼은 이같은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만약 그가 헤더를 할 수 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선수로서 그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밝혔다.

실튼은 이어 "이런 사건이 마라도나의 유산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정말로 위대한 선수였고 난 그가 60세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그는 특별한 재능이었다"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8강전 당시 잉글랜드의 미드필더로 뛰었던 피터 리드도 신의 손 사건 이후 5분 만에 나왔던 마라도나의 경이로운 드리블 득점을 언급하며 "그 득점은 내가 여지껏 봤던 것 중 최고였다. 그는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 중 하나였다. 그에 대한 우리(영국인)들의 기억이 어떻든 그의 유산은 최고로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8강전 당시 나왔던 마라도나의 2골과 관련해 그의 축구인생을 조명하며 "그는 신의 손과 황금의 발을 가진 남자였다. 1986년 월드컵은 오롯히 마라도나의 것이었다"고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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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달 기자 gunners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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