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악동의 사이..신의 품으로 돌아간 마라도나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2020. 11. 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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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2010년 6월7일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훈련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인 마라도나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11명이 하는 축구에서 유일하게 혼자서도 승리를 만들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동료 선수들 조차 초라하게 만들 만큼, 세계 축구 역사에 다시 나올 수 없는 천재성을 가져 ‘축구의 신’이라 불렸다. 환갑을 바라보던 지난 5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과거의 축구와 현대의 축구는 많이 다르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등번호 10번은 나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고 적을 만큼 당당했던 그가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26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지난 3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던 그는 이날 갑작스런 죽음으로 전세계를 슬픔에 빠뜨렸다.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빈민가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마라도나의 가정은 유복하지 않았고 형제자매도 무려 6명이나 됐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가난 속에서 축구는 마라도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매일 밤 축구공과 함께 잠들었고, 집안에서 드리블을 하다가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일찌감치 세상에 알려졌다. 8살 때 이미 지역 연고 유스팀에서 뛰던 마라도나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스카우트의 눈에 바로 띄어 프로팀인 아르헨티노스 주니오스의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됐다. 당시 유스팀 코치였던 프란시스코 코레뇨는 눈 앞에서 8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재능을 뽐내는 마라도나에 전율했다. 처음에는 나이를 속인 것으로 착각해 신분 확인까지 했다. 코레뇨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를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는 회상했다.

1995년 9월30일 서울 잠실 88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에서 드리블을 하는 마라도나의 모습. 연합뉴스


마라도나는 1976년, 16살 생일을 열흘 앞두고 1군 데뷔전을 가진 뒤 곧 리그를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선수가 됐다. 1979년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원맨쇼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고 자신은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이는 7년 후 열린 멕시코 월드컵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고, MVP에 해당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나폴리에 입단하면서 개인의 힘으로 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라도나가 오기 전 세리에A의 만년 중하위권 팀이었던 나폴리는 마라도나 입단과 함께 리그 (1986~1987, 1989~1990)와 코파 이탈리아(1986~198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1990), 유럽축구연맹(UEFA)컵(1988~1989) 등 무수한 우승을 차지했다. 나폴리가 속한 농업 중심의 이탈리아 남부와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소득 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하다. 밀라노, 토리노 같은 부유한 북부 도시에 나폴리 시민들이 느꼈던 열등감은 마라도나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개인의 힘으로 팀을 바꾼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도 혼자 힘으로는 팀을 이렇게 만들지 못했다. 지금도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신과 다름없는 존재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에서 홈팀 이탈리아와 나폴리의 스타디오 산 파올로에서 대결할 당시 마라도나가 “이탈리아인 취급도 못받는 나폴리 시민들이여, 차라리 나를 응원하라”고 하자 나폴리 팬들이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10년 6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경기에서 이과인의 골에 환호하는 마라도나. 연합뉴스


마라도나의 위대함은 선수 시절, 그리고 은퇴 후 벌인 온갖 기행과 악행에 깎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나온 ‘신의 손’ 사건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20대 초반부터 코카인 등 마약 중독 기미를 보여 물의를 일으켰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도핑 검사에서 적발돼 대회 도중 퇴출당하기까지 했다. 은퇴 후에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으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경기장 내에서 흡연과 인종차별 동작, 심지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행위까지 서슴없이 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펠레(브라질)는 자신과 세기의 라이벌로 평가받아온 마라도나의 퇴장에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고 전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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