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 작가들, 장시간 노동에도 연수입 1700만원

박준용 2020. 11. 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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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 실태조사
<한겨레> 자료

“연재할 때는 눈뜨고 먹는 시간 제외하고는 다 작업해야해요.”(30대 여성 ㄹ작가)

디지털 창작노동자들(웹툰·웹소설·일러스트 작가 등)이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온 종일 작품에 매달려야 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창작자들이 플랫폼으로부터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으며, 높은 수수료도 내고 있는 상황도 구체적으로 파악됐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실태조사 대상은 만 15살 이상 39살 이하 청년 디지털콘텐츠 창작 노동자다. 응답자는 331명(부분응답 제외한 분석대상 285명)이고, 전국여성노조가 주체인 만큼 응답자 95%가 여성이었다. 웹툰·일러스트·웹소설·웹툰 시나리오 및 스토리 작가 등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창작자 12명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노동계 차원에서 디지털 창작 노동자의 실태가 상세하게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문 결과를 보면, 작가들의 수입은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응답자들이 플랫폼 창작을 통해 얻은 수입은 2411만원인데, 중위값은 1700만원이었다. 응답자 절반은 플랫폼 창작으로 1700만원이하의 소득을 얻는다는 얘기다. 웹툰작가 경우 평균 3020만원(중위값 2040만원)으로 일러스트·웹소설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창작자들은 작품을 연재하기 전 수입을 얻을 수 없는 ‘비축기간’도 상당기간 거치고 있었다. 창작자의 계약 전 작품 비축 및 준비기간은 1년 중 평균 5.7개월로 나타났다. 1년 중 약 절반 정도를 작품 비축 및 준비기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수입의 영향으로 부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다수 작가는 “(창작이)주업이고, 창작노동에만 종사한다”(75.8%)고 했지만 “창작이 주업이나, 다른 일도 하고 있다”는 답도 17.5%였다.

작가들은 매출에서 플랫폼·에이전시(작가와 저작관 관리·기획·플랫폼 알선 등 업무)에 상당 부분을 수수료로 내야했다. 매출 중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 비중은 ‘모름’(23.5%)을 제외하면, 41∼50%(20.4%)가 가장 많았고, 31∼40%(15.8%) 등의 차례였다. 에이전시와 계약돼 있는 작가들은 에이전시에도 평균 37.4%의 수수료를 냈다. 심한 경우 에이전시·플랫폼 두곳에 모두 매출 40% 안팎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ㄱ작가는 “에이젼시를 통해서만 (연재를) 받는 플랫폼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을 해서, 작가는 에이젼시 수수료 따로, 플랫폼 수수료 따로 내야되니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창작자들 3명 중 2명인 66%가 “플랫폼·에이전시로부터 지시받는다”고 답했다. 작품 수정 때 구체적 지시는 일상적이다. ”만화를 그릴 때 플랫폼에서 개입을 엄청 많이 하는 거예요. 스토리 단계에서 ‘이거 추가 하고 저거 추가하고, 이렇게 합시다’ 얘기를 해서 그려요. 그럼 ‘눈을 좀 더 키워야 되고, 남자는 좀 더 날카롭게, 키를 더 크게 키우시고’ 막 이런 식으로 지시를 하는 거죠.”(20대 후반 여성 ㅊ 작가)

창작자들은 과로에도 시달린다.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작업시간은 9.5시간이고, 평균 주당 노동일수는 5.7일, 그리고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2.5시간이었다. 특히 웹툰 작가의 경우,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밤을 새거나 새벽 2시~3시에 작업을 마치는 야간노동도 빈번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플랫폼 창작 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며 겪은 질병 경험 실태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지난 1년간 업무로 인해 두통·눈의 피로(82.5%), 어깨·목·팔 등 근육통 (76.8%), 허리 통증(64.9%) 등 전반적으로 질병 경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한 플랫폼 창작 노동자들은 자택에서 일하는 비율이 비중(79.3%)이 높은데다, ‘여성’라는 이유로 돌봄을 병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플랫폼이 요구하는 마감을 해내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저는 재택근무를 하고 할머니랑 같이 거주를 하고 있다 보니까 부모님보다는 제가 간병을 하게 됐어요. 연재 마감과 간병을 동시에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결국은 마감을 그르치면서 할머니를 제가 퇴원을 시켰는데 다음날 돌아가시더라고요.(중략)나는 어쩔 수 없었는데 (플랫폼·에이전시에서) 안 봐주시더라구요. 이해를 못 하더라구요. (중략)왜 당신이 간병을 하는지 모르겠다고.”(30대 여성작가 ㄹ씨)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창작자와 플랫폼)계약 형태로는 전통적 기준의 핵심인 ‘전속성’이 약할 수 있으나, 실상 ‘종속성’이 매우 강하다. (플랫폼과)불공정계약이 이러한 종속성을 가능케 한다”며 “(이 구조에서) 플랫폼·에이전시·창작자의 계약관계는 각 단계별로 당사자 간의 불공정행위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어서,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남용 행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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