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를 믿는다, 데이터는 거들 뿐

이정국 2020. 11.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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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 놓은 이동욱(46)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감독의 쓰라린 선수 시절의 경험은 '이동욱 데이터 야구'의 출발점이 됐다.

이 감독은 "데이터 플러스 양의지 야구"라고 이를 설명했다.

데이터를 중시하지만, 현장 선수 의견 또한 존중하는 이른바 '휴먼 데이터 야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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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에서 우승까지' 이동욱 NC 감독

코치시절부터 쌓은 '데이터 야구'
두산 타선 묶은 파격 시프트 등
정교한 분석으로 '현장' 납득시켜

토탭 전환 뒤 '1일1깡' 성장 강진성
양의지의 송명기 투입 건의 수용 등
숫자에 '존중' 더해 새 리더십 창출
2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6차전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서 우승을 차지한 NC 선수들이 이동욱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 놓은 이동욱(46)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무릎 부상으로 2군과 1군을 오르내리다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하지만 이 감독의 쓰라린 선수 시절의 경험은 ‘이동욱 데이터 야구’의 출발점이 됐다.

24일 한국시리즈 우승 뒤 감격에 찬 이 감독도 이런 말을 했다. “선수로는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지도자가 되면서 내가 겪었던 것을 선수들도 겪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결과로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지도 방법을 연구했다.”

과거의 아픈 경험이 바로 ‘이동욱 야구’의 자양분이 됐다는 얘기였다. ‘믿음의 야구’로 순화되던 고집불통 전략, ‘맹장’이란 말로 미화되던 폭압적 리더십은 이 감독이 보기엔 현대 야구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동욱 감독의 야구가 숫자를 중시하는 데이터 야구인 것은 맞다. 그가 엔씨의 수비 코치를 맡으면서 수비효율성(DER)이나 실점을 막아내는 능력인 얼티밋존레이팅(UZR) 등 당시 한국 야구에선 생소했던 지표를 도입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보다 정교하게 선수들의 능력을 측정해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근거가 됐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 감독은 상대 타자들의 타구 방향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두산의 왼손 거포인 김재환과 오재일 타석 때 3루수 박석민을 1, 2루 사이로 보내는 파격적 수비 시프트를 단행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수비였다. 하지만 이런 수비 위치에선 왼손 타자들이 가급적 공을 밀어 쳐야 안타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서 접전을 치르고 올라온 두산 타자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과적으로 김재환은 타율 0.043, 오재일은 0.190으로 꽁꽁 묶였다.

데이터에 기반하지만 그렇다고 ‘머니볼’ 방식의 야구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이 이동욱 야구의 핵심이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4-2로 쫓긴 8회 송명기를 투입한 것은 데이터가 아닌 ‘믿음’에서 비롯됐다. 송명기 투입을 건의한 것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로 뽑힌 양의지 였다. 이 감독은 “김진성을 그대로 쓸지, 송명기를 올릴 지 고민했었는데 양의지가 ‘송명기 몸 안 풀어요?’라고 투수 코치에게 묻는 것을 들었다. 포수가 얘기한 것은 믿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약 송명기가 추가 실점을 해서 6차전 경기가 뒤집혔을 경우 7차전 선발 운영에 타격이 왔을 상황이었지만 양의지를 믿었다. 이 감독은 “데이터 플러스 양의지 야구”라고 이를 설명했다. 데이터를 중시하지만, 현장 선수 의견 또한 존중하는 이른바 ‘휴먼 데이터 야구’인 셈이다. ‘열린 사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숫자와 존중이 더해져 만든 ‘이동욱 야구’는 선수를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과학적 결과가 아니면, 선수들이 수긍을 안 한다. 근거가 있는 코칭이 돼야한다”는 신념에 선수들은 고집을 버리고 변화해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올 시즌 초 타율 1위를 질주하면서 맹활약한 강진성이다. 그동안 1군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강진성은 이 감독의 조언에 따라 다리를 들면서 치는 타격 폼인 레그킥을 버리고 두 발을 땅에 붙이는 토탭으로 타격폼을 조정한 뒤 강타자로 성장했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현장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죽은 데이터다. 데이터는 선수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감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동욱 데이터 야구’의 성과는 이제부터 시작일 지도 모른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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