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표상' 퇴계 이황 선생, 그가 남긴 교훈

배소영 2020. 11. 25. 2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성인을 따르던 길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로 다니다 이제야 돌아왔나.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딴 데 마음 두지 않으리."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65세 때 지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한 구절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동서 퇴계 이황 450주기 추모제
'군자유종, 세상의 빛이 되다' 주제
도산서원 상덕사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고유제가 열리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성인을 따르던 길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로 다니다 이제야 돌아왔나.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딴 데 마음 두지 않으리.”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65세 때 지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한 구절이다. 34세에 벼슬길에 오른 이황은 줄곧 고향을 그리워하다 50세에 귀향을 결심했다. 60세에는 고향인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안동시 도산면)에 도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이황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평생에 걸쳐 축적한 경륜과 지혜를 후학에게 전하다가 병세가 깊어져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북 안동 출신의 이황 선생의 서세(逝世) 45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7~28일 퇴계 선생 종택과 도산서원, 안동시민회관에서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이황은 우리나라에서 유통 중인 화폐 1000권 지폐의 앞면 모델로 유명하다.

추모제는 ‘군자유종(君子有終), 세상의 빛이 되다’를 주제로 퇴계의 삶을 조명하고 교훈을 되새긴다. 고유제는 퇴계종택 사당과 도산서원 상덕사에서 열린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이 나서 ‘퇴계 선생의 마지막 시간과 되살아나는 향기’를 주제로 강연도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말년에 후학을 양성한 도산서원. 한국국학진흥원
퇴계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다. 당대의 유학자였던 서경덕과 논쟁을 벌여 ‘기를 이끄는 이’를 부각시켰다. 이런 이황의 사상은 조선시대 주리론(主理論)의 뼈대가 됐다.

퇴계의 제자 정유일(1533~1576)은 퇴계를 두고 “마을 사람들 가운데 착한 사람은 그 도를 흠모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의로움을 두려워했다”며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라고 말했고 의심나는 것은 아뢰어 결정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이황의 청렴한 성품은 현세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황이 한성(漢城·서울의 옛 이름)에 머물 때다. 이웃집 밤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와 이황의 마당으로 익은 밤이 떨어졌다. 그러자 이황은 밤을 손수 주워서 담 밖으로 던졌다. 배가 고픈 아이들이 주워 먹을까 해서다.

퇴계 이황 선생이 남긴 유계(숨을 거둘 때 남긴 가르침).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또 이황은 병세가 위독해지자 여러 사람으로부터 빌린 책을 잊지 말고 돌려줄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조카에게는 유계(遺戒·숨을 거둘 때 남긴 가르침)를 받아 적도록 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첫째는 예장(禮葬·오늘날의 국가 장례)을 하지 말 것과 둘째는 제사에 값비싼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마한 돌에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10자만 쓸 것을 당부했다. 이황의 검소하고 소박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추모제는 자신을 낮추고 과분한 예를 물리치는 겸양의 덕과 허례를 배척하는 검소함, 조상을 향한 향념 등 퇴계의 고매한 가르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