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들 1] "나는 왜 4남매가 많다고 느꼈을까요?"
이 사회는 인구정책 따라 여성을 출산을 도구로만 본다
지난 10월15일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하다고 결정했는데도,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시민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6시간15분의 이어 말하기에는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직접 나서 또는 영상으로 또는 편지로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말했습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낙태죄 폐지’ 페이지에 이어 싣습니다.
자료 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 목소리 1 : 심○○
(발언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봤었던 독립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 어릴 적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10년 전에 봤던 독립영화가 지금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엔딩 장면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임신한 여학생이 고민을 하며 약국 앞을 서성이는 모습과 대비해서 임신을 시킨 남학생은 선풍기에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기는 바쁘다는 식으로 모르쇠를 했습니다. 거리를 헤매던 여학생은 1.5리터 간장과 식초를 사들고 컴컴한 공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제가 잊을 수 없었던 엔딩장면입니다. 과연 이것이 영화 속의 모습이기만 할까요? 이것이 10년전의 상황이기만 할까요.
지금 정부에서 올린 입법예고안대로만 하면 14주 안에 낙태 할 수 있고, 24주 안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들어 낙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여학생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14주 안에 알고 낙태할 수 있었을까요? 사회경제적 사실을 들어 상담 및 숙려기간을 거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성에게만 쏠리는 비난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조차 남학생은 함께 책임을 지지도 않았고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여학생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임신한 여학생은 죄인이었습니다. 영화 속임에도 그 여학생이 짠하게 남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임신한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책임을 온전히 여성에게만 지우는 불친절한 사회가 그대로 드러나 굉장히 불쾌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4남매로 늘 먹을 것으로 싸웠습니다. 외동과 둘만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왜 우리 부모는 애를 많이 낳았을까. 4남매보다 더 많이 낳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4남매가 많다고 느꼈을까요. 행복한 우리 가정,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은 4인 가족, 아이가 둘 이어야 행복하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들은 미개인처럼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필요에 따라 적게 낳으라 많이 낳으라 합니다. 인구가 많아질 때는 낙태를 허용하다 인구가 줄어드니 출산장려금을 주며 돈으로 홀리듯이 출산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낙태가 죄로 명명되었습니다. 산아제한을 할 때는 아이를 많이 낳는 여성은 미개인 취급을 받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시대에는 낙태하는 여성은 죄인이 됩니다. 산아제한 시대나 출산을 장려하는 시대 모두 임신과 출산 환경은 결코 여성을 배려하거나 안전한 사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구정책에 따라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봅니다.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은 건강하고 안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사회경제적인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여성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임신과 출산과정이, 양육할 환경이 안전한지를 도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제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은 여성 개별의 사안이 아니어야 합니다. 여성의 생리 피임, 임신중지, 출산 양육 등 재생산 모든 과정에서 불평등한 문제를 드러내야 합니다. 여성에게 낙태의 죄를 묻기 이전에 사회, 문화, 제도, 가치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낙태죄는 전면 폐지돼야 합니다. 그리고 전면 폐지되기 전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참가자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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