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햇살·새 소리..'코로나 블루'에 숲은 또 하나의 백신
[경향신문]
“숲에 이틀 다녀왔는데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싹 풀렸어요. 다시 현장으로 나가 일할 용기도 생겼고요. 숲이 주는 치유의 힘이 놀라워요.”
전남 화순전남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박아연씨(35). 코로나19 방역의 최일선에서 일해온 박씨는 지난 3일과 5일 장성치유의숲이 마련한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활기를 되찾았다.
박씨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온전히 숲에 맡겼다. 조용히 숲길을 걷기도 하고, 숲속의 해먹 위에 누워 아무런 생각 없이 쉬기도 했다. 숲치유 활동이 끝나고 난 뒤 박씨는 놀라운 변화를 느꼈다. 병원 업무와 관련된 온갖 잡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고, 피곤하던 몸도 가뿐해진 것이다. 박씨는 “숲치유를 함께 경험한 동료들도 대부분 좋은 효과를 얻었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숲치유가 코로나19로 생긴 의료진의 스트레스는 물론 우리 국민의 ‘코로나 블루(우울)’를 해소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숲치유로 ‘코로나 스트레스’ 푼다
방역 현장 의료진 위한 프로그램
숲속 나들이·복식호흡 등 통해
긴장·분노·우울·피로 등 줄여줘
지난 1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온통 우울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우울해지는 증상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다. 코로나 블루는 상당수의 국민이 경험하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5월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의 47.5%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함과 불안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현장의 의료진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경기지역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된 의료·방역요원 중 16.3%가 고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의료진은 물론 일반 국민들이 코로나19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숲(산림)치유’다. 숲치유는 숲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요소를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숲치유에는 숲의 경관, 산소, 소리, 햇빛, 피톤치드(식물이 만들어내는 항균성 물질), 음이온 등 다양한 치유인자가 활용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숲치유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뛰어넘어 사람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요즘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숲치유 프로그램을 전국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간호사 박씨도 이 프로그램 덕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
숲치유 프로그램의 효과는 과학적인 연구에서도 검증되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 6월25~26일 경북 영주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에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등 18명을 초청, 숲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그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의료진 등은 1박2일 동안 숲속으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숲의 맑고 깨끗한 산소와 피톤치드 등을 받아들이기 위한 복식호흡을 하면서 코로나19 방역현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해먹에 온몸을 맡기고 명상을 하는 등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활동에도 참가했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뒤 실시한 분석에서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의료진의 정서적 안정성이 프로그램 참여 이전 88.7점(100점 만점)에서 참여 이후 96.53점으로 개선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의 근심과 두려움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의료진 등이 느끼는 긴장·분노·우울·피로 등은 현저하게 감소하고 활력은 크게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료진 등의 프로그램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1점으로 높게 나왔다. 산림청 관계자는 “숲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이 코로나 스트레스나 코로나 우울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국 국립산림교육·치유시설 13곳에서 당일·1박2일·2박3일 일정의 숲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숲치유 프로그램을 갖춘 곳은 국립산림치유원과 횡성·칠곡·장성·청도 등에 있는 국립숲체원 5곳, 대관령·대운산·김천·제천·예산·곡성·양평 등에 조성된 국립치유의숲 7곳 등이다.
산림청은 보건복지부와 협업해 감염병전담병원과 선별진료소 등의 인력을 위한 숲치유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산림청의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등의 수는 약 2000명에 이른다. 지난 10월부터는 취약계층 주민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코로나 우울이 고착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로나19 대응 숲치유 프로그램은 내년에도 계속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대면 시대’에도 숲 체험한다
산림청, 13곳서 산림치유 활동
자가격리자엔 ‘반려식물’ 보급
공공의료기관엔 ‘스마트 가든’
비대면에도 심신 치유할 수 있게
‘햇빛명상’·숲태교 콘텐츠 개발 등
자연의 소리 담은 동영상 제작도
산림청은 숲에서 진행하는 숲치유 프로그램 외에 도시의 생활공간에서 숲을 경험하고 숲치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특히 자가격리자나 코로나19 대응인력 등이 ‘비대면 상황’에서도 숲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 주력했다. ‘반려식물’ 보급, ‘스마트 가든’ 설치 사업이 대표적이다.
산림청은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반려식물을 보내는 사업을 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협업 방식으로 진행했다. 지금까지 이 사업을 통해 반려식물을 받은 자가격리자는 약 2000명이다.
산림청이 자가격리자들에게 보낸 반려식물의 수종은 산호수다. 선명한 붉은 열매가 바닷속 산호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산호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식물은 반려식물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자생 수종인 산호수는 봄에는 연둣빛 새순을, 여름에는 흰색 꽃을, 가을·겨울에는 붉은 열매를 각각 볼 수 있기 때문에 곁에 두고 있으면 1년 내내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산림청은 코로나19 관련 공공의료기관 10곳에 스마트 가든을 설치했다. 스마트 가든은 실내에 설치하는 소형 정원을 말한다. 25㎡ 이하 크기의 정육면체형 실내 정원이나 벽면형 정원을 의료기관 내부에 설치,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등이 실내에서 자연을 접촉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바쁜 일정상 숲을 찾기 어려운 의료진이 생활공간에서 숲을 체험하고 숲의 치유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은 숲속 영상과 숲속에서 나는 자연의 소리를 접하면서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동영상도 제작해 블로그 등으로 공개하고 있다. 국립김천치유의숲은 녹음으로 우거진 숲속 영상과 함께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을 들을 수 있는 영상 ‘자작나무 숲 같이 걸어요’를 만들었다.
국립칠곡숲체원은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사람들의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좋은 ‘햇빛명상’ 등을 알려준다. 산림청은 이 밖에 임신부를 위한 온라인 숲태교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코로나19 의료진을 포함한 우리 국민이 코로나 우울을 극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숲치유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보다 많은 국민이 안전하게 숲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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