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들 "택시기사 구둣발 폭행한 승객 불구속 수사라니" 공분
법조계 "죄질 나빠 3년 이상 중형 예상..관행 벗어야"
심신미약 주장 어려울 듯..가해자 경찰서 혐의 인정
경남 거제에서 한 택시기사가 만취 승객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의 블랙박스 영상이 확산하면서 25일 공분이 일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징역 3년 이상의 중한 사안임에도 불구속 수사로 진행된 점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음주를 핑계로 심신미약을 주장해 형량을 감경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40대 초반의 택시기사 A씨는 17일 자정 무렵 고현동에서 탑승한 40대 중반 승객 B씨에게 폭언·욕설과 함께 구둣발·주먹 등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승객 B씨는 A씨가 목적지를 묻자 "엄마 뱃속에서 너 뭘 배운 것이냐" 등의 발언과 함께 "차를 출발해라, 세워라"를 반복하며 윽박지르고 폭행했다.
(관련기사 ☞ [단독] 만취 승객에 '구둣발 폭행' 당한 택시기사 "아직도 손이 떨리는데…")
"불구속 수사 이해 안 돼" "술이 면책 특권이냐" 여론 공분
A씨는 구타 당하는 도중 112에 전화를 걸었고, 비명 소리를 들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B씨를 격리하고 입건할 수 있었다. B씨 측에서는 400여만원의 합의금을 제시했으나 A씨는 거부했다. 이후 거제경찰서에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상해 혐의를 적용,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 의견으로 24일 B씨를 통영지청에 송치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경찰의 불구속 수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한 자 구속수사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무차별 폭행이 특가법상 5조의 10 정도 항목에 적용된다면 당장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영상 속 폭행 현장을 접한 이들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이정도 사안이면 구속 수사가 당연한 것 아니냐"(정****), "합의와 상관없이 구속해야 한다"(조****), "피해자는 고통 속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가해자는 편한 집에 있게 두다니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데****) 등의 의견을 나타내며 분노를 표했다.
승객 B씨는 범행과 관련해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심신미약을 주장할 경우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음주범죄는 가중처벌하고 심신미약에서 제외해야 한다"(pe****), "본인이 마시고 싶어서 마신 건데 술이 면책특권이 돼서는 안 된다"(ro****) 등의 우려가 나왔다.
경찰 "가해자 심신미약 주장은 안 해"
형사소송법 70조는 구속 사유로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를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도 고려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의 경우 구속 요건에 미치지 못 했다는 입장이다.
거제서 관계자는 이날 한국일보에 불구속 수사와 관련해 "여러가지 사항을 종합해 판단한 것인데 폭행에 의해 전치 3주의 상해가 발생한 혐의는 충분히 소명됐고 구속 수사를 고려했다"면서도 "주거가 일정하고 신원이 분명해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가능성이 낮아 영장이 발부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에서 구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검찰 단계에서나 재판 과정에서 법정구속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심신미약과 관련해서는 "가해자 B씨도 범행을 부인하지는 않는 데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한 것이라고는 하나 당시 의식이 없었다는 취지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며 "만약 본인이 주장할 경우 법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문철 변호사 "일벌백계 차원서 구속기소 필요"
다만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3년 이상 징역형의 중형이 예상되는 죄질이 나쁜 범행인데 증거 인멸·도주 우려가 없다, 진단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하면 안 된다"며 "누군가 죽거나 골절이 되는 결과가 나와야만 구속시키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둣발로 사람을 폭행해도 구속이 안 되네', '집행유예가 나오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되는데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벌백계하는 차원에서 이번 사안은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검찰에서 구속기소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에게 적용된 특가법상 상해(운전자 폭행치상)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다. 우려가 나오는 심신미약과 관련해서는 형법 10조 2항에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0년 대법원 양형기준은 '본인 책임이 있는 심신미약'도 일반양형인자 감경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초범이거나 진지한 반성을 하고있는지도 고려 대상이다. 운전자 폭행치상 관련 참고 양형기준에 따르면 기본양형은 1년 6개월에서 3년으로 규정돼있으나 감경될 경우 10개월에서 2년 사이, 가중된 경우 2년에서 4년 사이의 범위에서 주로 책정된다.
한 변호사는 심신미약을 두고는 "주취 폭력과 전쟁 차원에서 오히려 더 엄벌해야 한다"며 "요즘은 음주의 경우 법원에서 심신미약 감형도 잘 인정해주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영상을 보면 B씨가 '너 엄마 뱃속에서 뭘 배웠냐' 이야기하고 '차를 세워라, 출발해라' 이야기를 다 하는데 심신미약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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