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 알고도 은폐..2600쪽 수사기록 입수

강민수 2020. 11. 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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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신라면세점이 대표이사의 명품 시계 밀수 사실을 인지하고도 2년 넘게 이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부터 시계 밀수 의혹으로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를 받아온 HDC신라면세점은 이미 2016년 말 밀수 사실을 확인해 관련 기록까지 남겨놨지만, 사건을 주도한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선에서 조용히 사건을 덮은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시작된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기록 2600여 쪽을 입수, 분석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계 밀수 사실을 알고도 은폐한 사람은 2016년 당시 HDC신라면세점의 최고재무책임자였던 김 모 씨였다. 그는 현재 HDC신라면세점의 대표를 맡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6월부터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주도해 벌인 '명품 시계 밀수 사건'을 추적해 보도한 바 있다. 명품 시계 밀수에 동원된 HDC신라면세점 직원들의 증언과 관련 기록을 토대로 한 보도였다. 관세청과 검찰은 1년여 간 수사를 벌인 뒤 올해 6월 관련자 7명과 HDC신라면세점 법인을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현재 인천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길한 전 대표는 외국인 명의로 시계를 구매한 뒤, 직원들을 동원해 명품 시계를 국내로 몰래 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4건, 총 1억 7천여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밀수한 혐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HDC신라면세점 대표 시계 밀수 사건 기록에 등장하는 밀수 시계
 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 사건 기록에 남아 있는 시계 리스트. 이 리스트에는 시계를 몰래 들여오기 위해 직원들이 출장간 기록과 시계 브랜드, 면세가격이 적혀 있다.  이 리스트는 관세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기 2년 전인 회사 임원이 작성한 것으로, 이미 대표의 시계 밀수 사실이 회사 내부에서 확인됐으나 폐기됐다. 

수사기록서 '밀수 시계 리스트' 발견... HDC신라, 관세청 조사 2년 전 밀수 사실 확인

뉴스타파가 입수한 2600쪽 분량의 수사기록에는 관세청 수사가 시작되기 2년 전 HDC신라면세점이 자체 조사를 거쳐 만든 '밀수 시계 리스트'가 들어 있다. 밀수한 시계목록과 사진은 물론 밀수에 동원된 HDC신라면세점 직원들의 홍콩 출장 내역, 시계 브랜드와 면세가격까지 기록된 사진 파일이다. HDC신라면세점 임직원들의 범죄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밀수 시계 리스트'에는 총 6개의 밀수 시계 목록이 들어 있는데, 그 중 3개(까르띠에, 피아제, 로렉스)는 이미 검찰 수사로 혐의가 확정됐다.

'밀수 시계 리스트'는 밀수에 동원된 HDC신라면세점 황 모 팀장의 휴대폰에서 발견됐다. 황 씨는 지난해 6월 관세청 조사에서 "면세점의 한 임원이 지난 2016년 말경 이 문서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관세청 조사가 진행되기 2년쯤 전에 이미 HDC신라면세점 측이 대표이사의 시계 밀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황 씨는 이길한 전 대표의 지시를 받아 홍콩으로 건너가 시계를 국내로 밀수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자료는 2016년 말경 김OO대표가 사무실로 불러서 저와 직원들의 홍콩 출장 기록이 작성된 엑셀자료를 보여주면서 이길한 대표가 직원들을 시켜서 받아오라고 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해서 작성된 겁니다.
-당시 김OO이 이 자료를 보여준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길한 대표가 이것으로 나갈 것이니 OOO쪽으로 붙어라'라고 하면서 보여준 겁니다. 
- 황OO /HDC신라면세점 팀장(피의자신문조서, 2019. 6. 29)

'밀수 시계 리스트'를 만든 사람은 2016년 당시 HDC신라면세점의 최고재무책임자였던 김 모 씨였다. 그는 현재 HDC신라면세점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7월 김 대표는 관세청 조사에서 이 문서가 만들어진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겨울(2016 연말이나 2017연초)로 기억하는데, 황OO이 제 사무실로 찾아와 고충이 있다고 하여 상담을 하던 과정에서 이길한 대표가 해외 출장을 가던 황OO에게 시계를 갖다 달라고 하여 가지고 왔는데, 어떤 시계는 고가인 것 같아 힘들었다라고 황OO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여 지금 보여주신 내용을 연필로 작성후 직원에게 워드 작업을 하라고 하여 받은 문서 입니다.
- 김OO/HDC신라면세점 대표(진술조서, 2019. 7. 16)

김 대표는 관세청 조사에서 회사 내부에 대표이사의 명품 시계 밀수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해당 문서를 파기했다고 진술했다. 

-이 문서와 관련하여 회사 또는 투자사인 호텔신라, 현대산업개발에서 감사 또는 사실 확인한 사실이 있나요?
없습니다. 큰 일이라 생각하였는데 문서를 작성해놓고 보니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작성했던 문서를 파기했습니다.
-이 문서가 호텔신라에 통보되어 이길한이 사임한 것이죠?
호텔신라에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서 내용을 관세청, 세관에도 보고한 사실이 있나요?
회사차원에서 관세청에 알려준 사실이 없고 반대로 관세청에서 연락온 사실도 없습니다.
- 김OO/HDC신라면세점 대표( 관세청 진술조서, 2019. 7. 16)

김 대표가 나서 사건을 은폐한 뒤, HDC신라면세점은 시계 밀수를 주도한 이길한 대표를 내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이길한 대표는 2017년 5월, 임기를 7개월 쯤 남기고 중도 사임했다. 

서울 용산역사 내에 위치한 HDC신라면세점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면세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범 현대가인 HDC와 손잡고 만든 회사다. 합작 비율은 50대 50. HDC와 호텔신라가 각각 대표이사를 선임, 공동대표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따낸 HDC신라면세점은 개장 이후 급성장했다. 출범 3년 만인 2019년 매출 7694억원, 순이익 48억원을 기록했다. 시계 밀수를 주도한 이길한 씨는 삼성물산과 호텔신라 면세점 부분 임원을 지낸 뒤 2015년 12월 2년 임기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밀수 은폐 당사자는 현재 HDC신라면세점 대표 

면세점은 관세청의 특허 심사를 바탕으로 허가되는 특혜성 사업이다. 때문에 관세청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 운영된다. 특히 ‘임원진의 비리 및 부정 여부’는 특허 갱신 심사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범죄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묵인, 은폐했다는 사실이 가벼운 죄가 아닌 이유다.  

HDC신라면세점 측이 대표이사 등이 관련된 시계 밀수 사실을 알고도 덮었다는 의혹은 이미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보도로 제기된 바 있다. 또 같은 달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었다. 하지만 당시 HDC신라면세점 측은 의혹을 부인했었다. 

뉴스타파는 면세점 대표의 밀수사실을 은폐한 사실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은폐를 주도했고 현재 HDC신라면세점 대표를 맡고 있는 김 모 씨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으나,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대표이사 밀수 은폐했지만 갱신 심사 무난히 통과...경영능력 93.3점

대표이사의 밀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지만, HDC신라면세점은 지난 8월, 관세청 갱신심사를 통과돼 앞으로 5년간 더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갱신심사위원회는 운영인의 경영능력을 100점 만점에 93.3점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대표이사가 주도해 밀수한 시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기록에는 이 질문에 대한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의 진술이 들어 있다. “면세점에서  팔리지 않는 재고 시계들을  아는 외국인들의 요청으로 대신 구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관과 검찰은 이길한 전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수된 시계의 행방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뉴스타파 강민수 cominso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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