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후보 없거나 무관심..코로나가 삼킨 대학 '총학 선거'
온라인 수업으로 캠퍼스 한산..비대면 선거운동도 영향
소수자·등록금 반환 등 현안에 대한 '공론장' 축소 우려
[경향신문]
코로나19 사태 속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관심 속에 치러지고 있다.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된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소수자 의제가 외면받는 등 선거가 공론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는 최근 제62대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다. 후보 등록 기간을 연장했지만 단 한 명의 후보자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지난해에도 선거 도중 후보자가 사퇴해 1년째 총학생회장이 공석이었다. 투표 정족수 미달 등 사유가 아닌 후보자 부재로 선거가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양대와 한국외대, 숙명여대 등도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취소됐다.
대학생들의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더욱 심각했다. 코로나19로 주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면서 캠퍼스에 학생 자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청회, 투표 등 선거 절차도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각 후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홍보전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최근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의 온라인 공청회에 참석한 고려대 사회학과 천양우씨(20)는 25일 “(선거가) 비대면으로 치러지면서 확실히 학우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느꼈다”며 “공청회 중계방송의 시청자 수도 40명을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거가 무관심 속에 치러지면서 소수자 의제가 외면받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날로 투표 2일차를 맞은 중앙대에서는 의과대학 학생회 선거운동본부가 교내 성평등기구의 질의에 부적절한 답변을 해 논란을 빚었다. 캠퍼스 내 성소수자 차별 관련 정책이 있느냐는 질의에 해당 선거운동본부는 지난 20일 “성소수자를 접한 적이 없어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성평등과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각각 “의대에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다” “우리(한국인)와 다른 대우를 받는 유학생들은 없다”는 답을 내놨다.
답변 내용이 공개되자 지난 23일 교내에는 해당 선거운동본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SNS에는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글씨 릴레이 챌린지가 벌어졌다. 선거운동본부는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대자보를 쓴 이 대학 사회과학대 2학년 이현수씨(21)는 “대자보를 의학관에 붙였고, 온라인에서도 비판 여론이 꽤 있었지만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코로나19 영향으로 학교에 사람이 없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2017년 서울대 치과대학 학생회 사례와 대조적이다. 당시 후보 측은 장애인 정책 질의에 “우리 과에는 장애인이 없다”며 “배리어프리(장애물이 없는) 시설도 딱히 없다”는 답변을 했고,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자 결국 사퇴했다.
등록금 반환 등 코로나19로 인한 현안이 적지 않은 가운데 학생 대표가 없는 대학 사회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의 저자 김창인씨는 “대학이 학문 공동체는 물론 생활 공동체라는 기능을 상실하는 데 코로나19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며 “대학이 그저 학사 일정을 수행하는 공간 이외의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없고, (소수자 의제 등의 이슈에) 문제의식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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