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가르는 바람의 노래' 실험미술 선구자 이승택展
대지미술 등 장르 넘나든 250점
2022년 구겐하임서도 전시
"내 나이 이제 구십 다돼
마지막 전시 기억해달라"
기와지붕 위로는 길게 어망을 늘어뜨린 '바람 소리'가 걸렸다. 그의 '바람' 연작은 천이나 종이를 나무나 줄에 묶어 공간 가운데 펄럭이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흐름을 시각화한 데 비해, '바람 소리'는 고기를 잡는 어망으로 바람의 '형상' 대신 바람의 '소리'를 낚는다. 어망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면서 나는 독특한 소리를 통해 관객은 바람을 청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작가의 고향인 함경남도 고원의 광활한 대지에서 부는 스산한 바람 소리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승택의 60여 년 작품 세계를 온전히 회고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을 이달 25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성장(오지탑)'(1964), '무제'(1968) 등 대표작 10여 점은 다시 제작해 설치했다. 작가는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전시명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모든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 생각하고 미술이라고 정의된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24일 만난 작가는 "연암 박지원이 예술에서 비슷한 건 가짜라고 했다. 우리도 외국 사조에서 유행한 걸 흉내내곤 했는데, 나는 그 유행이 몇 년 못 가 쓰레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의 개념적인 작업을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미술관마당과 종친부마당에는 1970년 홍익대 빌딩 사이에 100여 m 길이 푸른색 천을 매달아 바람에 휘날리게 한 기념비적 작품 '바람'을 포함한 1970~1980년대 '바람' 연작 2점이 재현됐다. 천의 흔들림을 통해 바람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시적인 작품. 설명을 이어가던 노장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이 바람 작품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다. 내 나이가 구십이 돼서 몇 년 못산다. 마지막 전시를 여러분이 보고 있는 거다. 영광이다. 이승택의 마지막 전시를 기억해달라."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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