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무슨,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어".. 감천마을에서 생긴 일

김재욱 2020. 11.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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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을 지정 후 낙후된 주거 환경.. 지자체 지원 이뤄져야

[김재욱 기자]

 주거지를 본 따 만든 '감천집 등'이 감천문화마을 입구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 신민하
부산 감천동은 1950년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되었다. 그 힘겨운 삶의 터전은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각종 공모사업을 유치하여 알록달록하게 바뀌어 갔다.

그렇게 탄생한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로 불리며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을 모았다. 2019년에는 308만 명이 방문해 부산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
  
감천 주민들이 도시재생 사업에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참여했기에 감천문화마을이라는 문화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그런데 감천문화마을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원주민들이 감천문화마을을 계속해서 떠나고 있다.

부산광역시 주민등록 거주인구통계에 따르면, 마을 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9년 1만593명이었던 주민 수는 2019년 7298명으로 줄었다. 그들은 왜 떠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감천문화마을을 찾았다.
  
"집값이라는 것도 없어"
  
겉으로 봤을 때 알록달록한 외벽을 가진 건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기 일쑤였다. 산복도로 양옆으로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활기를 띠는 상가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기존의 학술 연구에 따르면, 관광지화로 집값이 오르면서 월세도 덩달아 오른 것(젠트리피케이션)이 원인이다. 하지만 직접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그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빈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신민하
 
"집값이라는 것도 없어. 내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팔리지 않아서."
    
집값은 편리한 환경으로 그 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때 또는 향후 개발 가능성 등으로 투자할 가치가 높을 때 오른다. 그러나 감천문화마을의 주거지는 그 두 가지 요건에 모두 어긋난다.

우선 높은 경사도와 좁은 골목으로 보행환경이 불편하고, 30년 이상 노후화된 협소 주택이 많아 새로운 인구 유입이 발생하기 힘든 환경이다. 2019년 3월 1일 감천문화마을 감정초등학교의 폐교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도시 정비 계획에 따른 재개발 및 재건축 등의 시행이 사업성 부족으로 장기간 표류하면서 마을 발전에 대한 기대는 점차 낮아졌다. 무분별한 건축행위와 급속한 상업화를 막기 위해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도 대폭 제한되었다. 이로 인해 마을의 투자 가치도 하락하게 된 것이다.
   
원주민은 왜 떠나고 싶어 할까
 
 
감천문화마을은 2017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중점관리구역, 일반관리구역1·2, 감내1·2로구역, 옥천로구역, 옥천로75번구역 등으로 감천 일대를 나누어 구역별 특성에 맞게 건축물의 높이, 용도 등에 규제사항을 두었다.

공통으로 대형 프랜차이즈는 모든 구역에서 불허한다. 마을의 지역 상권이 붕괴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또한, 건축물의 외관에 대해서도 구역별로 지붕, 외벽, 출입문, 부착물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제한사항을 두어 마을 특유의 경관을 보호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막고 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로 인해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집을 못 팔아서 못 가고 있어. 저기 아파트가 지어진 지 3년이 다 돼가는데 비워놓고 여기 그냥 이렇게 있어."

37년 동안 감천을 지켜왔다는 ○○슈퍼 사장님은 지구단위계획 때문에 가게가 팔리지 않아 아파트로 이사 가지 못하고 있다며 속상해했다.

상업시설이 즐비한 '감내2로 구역'의 제1종 근린생활시설에서는 휴게음식점(카페, 분식점 등)이 허용되는 반면, '중점관리구역'은 소매점, 이용원, 목욕장, 세탁소, 의원, 마을회관 등의 용도로만 사업이 허용된다. 즉, 지구단위계획이 확립된 이후 ○○슈퍼 자리에 들어오려는 외부인은 휴게음식점을 내지 못한다.

"나는 외부 사람이 들어와 이 건물에서 어묵도 하고, 떡볶이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못 하게 막아놨어. 이건 아닌데..."

슈퍼 자리는 외부인이 소매점으로만 이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만 팔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관광지화되는 와중에 주거지의 좁은 골목에 있는 건물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중점관리구역의 휴게음식점 제한은 관광객들이 거주지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주민들 목소리 귀 기울여야
  
 
감천문화마을은 주민들이 잘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감천문화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더 나은 환경으로 나갈 여력이 없는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사람이 좋아서, 이때까지 살아온 곳이라서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되지 않는 환경에 원주민은 계속해서 마을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들이 떠나 비워진 집이 다시 채워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감천문화마을의 하이라이트는 형형색색의 집들이 펼쳐져 있는 주거지다. 그런데 그 속에 사는 주민들의 불편은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주민 이탈의 이유를 집값 상승에서 찾는 것은 불편한 환경에 대한 지자체의 부족한 지원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가린다.

아름다운 색으로 덮여 버린 감천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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