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집단반발, 7년만에 평검사 회의 개최 논의

김아사 기자 2020. 11. 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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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전경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직무집행 정지가 이뤄지면서, 검찰 내부에선 일선청 수석급 평검사를 중심으로 평검사 회의 개최가 논의되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평검사 회의는 검찰청별로 회의를 열어 요구 조건을 취합한 뒤 검찰 수뇌부나 법무부에 전달하는 ‘집단 행동’이다.

평검사회의 소집 권한을 갖는 일선청 수석급 평검사는 부부장검사 바로 밑 기수인 사법연수원 36기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부산지검, 수원지검 등 주요 검찰청 수석급 평검사 위주로 먼저 회의 소집 논의가 이뤄졌고 이후 다른 평검사들에게도 평검사 회의 주제, 소집 방식, 소집 후 성명서를 낼지 여부 등 의견을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검사 회의가 소집될 경우 이는 7년 만의 일이다. 2013년 혼외자 의혹이 제기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밝히자 ‘검찰 중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성명서를 냈다. 2012년 부장검사 뇌물 수수 사건과 수습 검사 성추문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평검사 회의가 열려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또 2011년 6월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평검사 회의가 개최돼 비판적 의견을 냈다. 이번에는 추 장관의 조치가 적법한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등이 논의 대상이다.

검찰 내부에선 이미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정희도 청주지검 형사1부장은 25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거론하며 “부당한 지시는 거부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김창진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1부장도 이날 “장관이 발표한 징계청구 사유는 누구도 징계를 통해 직무를 배제할 수 있음을 명확히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사 350명 실명 걸고 집단반발 “나치 괴벨스 떠올라”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직무 배제 사태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검란(檢亂)’으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대검찰청 연구관들이 회의를 거쳐 ‘추 장관 지시는 위법·부당한 조치’라는 성명서를 낸 데 이어, 부산지검 동부지청 평검사들도 전국 검찰청에선 최초로 평검사 회의를 열고 같은 입장을 내놨다. 그간 검찰 내부망에서 ‘비판 댓글’로 나타났던 검사 반발이 ‘성명서’ 형태의 단체행동으로 이어지면서 반발 강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검란 전조 나타나고 있어”

대검 소속 사법연수원 34기 이하 검찰연구관(검사)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회의에서 성명서를 작성한 뒤,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조남관 대검 차장에게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 차장은 “조금만 있어 보라”며 성명 발표를 미뤄 일부 연구관이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검 연구관들은 전국 평검사 회의가 열리기 전에 대검 평검사들이 먼저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연구관 최선임 기수인 34기 연구관이 답을 하지 않는 조 차장에게 ‘입장문을 발표하겠다’고 주장해 검찰 내부망에 게시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 직무정지에 대한 비판

부산지검 동부지청도 이날 전국 검찰청으로서는 처음으로 평검사 회의를 열고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검찰 내부망에 올린 입장문에서 “윤 총장 직무정지는 국가의 준사법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검찰제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로서 재고돼야 한다”고 했다.

평검사 회의가 열린 것은 7년 만이다. 지난 2013년 혼외자 의혹이 제기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밝히자 열렸고 서울서부지검에서 개최됐다. 개별 검찰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다른 지역 일부 검찰청에서도 평검사들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사는 “정권 비리 의혹을 수사했던 검사들을 찍어내는 ‘학살 인사’, 윤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연이은 수사지휘권 발동, 부당한 감찰 지시 남발 등 추 장관에 대해 쌓였던 검사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라고 했다.

◇”괴벨스가 떠오른다”

앞서 24~25일 이틀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엔 추미애 법무장관을 비판하는 검사들의 글이 6개 올라왔고, ‘동조 댓글’은 이날 오후 350개가 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김창진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는 이날 “장관이 발표한 총장의 징계 청구 사유는 ‘징계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누구도 징계를 통해 직무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시켜 줬다”며 “위법하고 부당한 징계권 행사를 좌시하지 않는 것이 국민이 우리에게 부여한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부장 글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一家) 의혹 수사를 담당했던 고형곤 대구지검 부장검사가 댓글을 달고 “무법천지가 난무하는 모습을 보니 무력하고 자괴감이 든다”며 “위법한 징계 청구와 직무 배제에 결단코 반대한다”고 했다. 다른 평검사는 “이런 일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검사로서의 사명감이 짓밟힌 느낌”이라고 했다.

김경목 수원지검 검사는 전날 “집권 세력인 정치인 출신 장관이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총장을 내칠 수 있다는 뼈아픈 선례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았다”며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집권 세력이 비난하는 수사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수현 제주지검 인권감독관은 ‘불법, 부당한 총장 직무 배제에 단연코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너무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감독관 글에는 “괴벨스(나치 정권의 선전·선동을 총괄했던 히틀러 측근)가 떠오르는 하루” “황당하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드는 아침” “이 정도면 절대왕정 아닌가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

◇前 총장 “히틀러, 김정은도 법 체계 맞춰 지시”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정권이 정치적 속셈으로 마치 계획을 세운 듯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장관이 떠들고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침묵하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장을 맡았던 신평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대미문의 추미애 (법무장관) 활극을 보면 개탄스럽다”며 “여당의 당적을 가진 그가 수사지휘권을 핑계로 칼을 휘두르며 정권에 대한 수사를 막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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